탈시설지원 체계를 위한, ‘탈시설지원 조례’ 제정 관건
서울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전국최초에만 집착 안 돼
장애인 자립생활 근간인 센터 확충, 인건비 예산 확대 필요
서울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의지 예산으로 보여야
탈시설 정책을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도입한 서울시. 중앙정부도 서울시의 탈시설 정책을 모델로 삼고 있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시 탈시설 정책은 온전히 서울시 스스로가 만들어온 것은 아니다. 탈시설장애인과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 당사자 목소리를 강력하게 전했고, 서울시가 어느 정도 부합한 정책을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 부임 이후 서울시 탈시설 정책이 주춤하고 있다. 서울시의 “중앙정부 정책에 발맞춘다”라는 선언은 곧 탈시설 정책 역행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탈시설 정책의 위기 속에서 서울시 장애인자립생활정책과 탈시설운동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2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항로’ 5층 회의실에서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최로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내년 만료를 앞둔 서울시 ‘제1차 장애인 자립생활지원 5개년 계획(2018~2022)(아래 1차 자립생활계획)’과 ‘제2차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2018~2022)(아래 2차 탈시설계획)’의 이행 성과와 평가, 앞으로 탈시설 정책에 주요하게 담겨야 할 내용이 논의됐다. 그러나 서울시 탈시설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에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와 장애인복지정책과 모두 불참해 아쉬움을 남겼다.
- 탈시설지원 체계를 위한, ‘탈시설지원 조례’ 제정 관건
애초 서울시가 계획한 2차 탈시설계획은 소극적이었다. 이에 대해 장애계가 2019년 서울시청 후문에서 20여 일간 천막농성을 하면서 2020년부터 이 계획은 대폭 수정됐다. 서울시는 2차 탈시설계획에서 5년간 장애인 탈시설 목표 인원을 300명으로 잡았으나, 장애계의 거센 요구로 800명으로 상향 조정했다. 자립생활정착금은 기존 1200만 원에서 2022년에는 1500만 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계획이 담겼으며, 지원주택은 매년 5호씩만 신규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70호씩 확대 지원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그러나 2021년 현재 서울시에서 탈시설한 장애인은 324명으로, 목표치의 40.5%에 불과하다. 목표치를 이루려면 내년까지 476명이 추가로 탈시설 해야 한다. 더욱이 이 수치에는 지역사회로의 진짜 탈시설이 아닌, 공동생활가정(그룹홈)으로의 전원도 포함된 것이기에 실제 탈시설 이행률은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서울시 관할 거주시설에는 2500여 명의 장애인이 수용돼 있다.
1300만 원에 머물러 있는 자립생활 정착금이 내년에 1500만 원으로 오를지도 관건이다. 현 장애인 지원주택은 130호로, 올해 공급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203호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서울시가 목표하는 탈시설장애인 인원 800명에 현저히 미달한 수준으로, 물량 확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2차 탈시설계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이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탈시설 확산을 어렵게 하는 것은 탈시설 지원체계에 대한 법적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짚으며 “탈시설과 단계적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내용을 담은 조례를 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특별시 탈시설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위한 민관협의체가 꾸려져 논의 중이다. ‘탈시설’의 개념과 용어가 올바르게 정립되는 게 관건이다.
- 서울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전국최초에만 집착 안 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주거지원 △경제지원(일자리) △문화·체육·여가생활 지원 등이 담긴 서울시 1차 자립생활계획의 평가와 개선점도 제시됐다.
서울시는 중앙정부의 활동지원제도의 빈틈을 메꾸는 △활동지원 24시간 지원(2015년) △만 65세 이상 장애인 추가 지원(2020년) △탈시설장애인 활동지원 추가 지원(2018년)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 2019년 장애인 주거지원의 새로운 모델인 ‘지원주택’을 제시했다. 지난 2020년 7월에는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라는 제도를 도입해 새로운 일자리 개념을 제시했다. 분명 중앙정부보다 앞선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서울시는 활동지원 24시간 지원을 2021년까지 240명으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현재 200명에게만 지원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의 활동지원 24시간 대상자 선정 기준이 까다롭게 적용되고 있다. 탈시설장애인의 활동지원 추가지원 기한을 2년으로 둔 점도 개선점으로 지적됐다.
이형숙 회장은 “장애인 서비스종합조사의 X1(기능제한)점수로 추가급여가 지급되고 있는데, ‘와상/사지마비, 독거’ 등의 기준이 적용되고 있어 다양한 취약계층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노인, 어린 자녀 등과 함께 거주하며 실질적 돌봄지원을 받기 어려운 준독거가구의 최중증장애인의 활동지원 24시간 지원도 매우 절실하다. ‘독거 기준’이 완전히 삭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19년부터 탈시설장애인에 추가지원됐던 활동지원 120시간이 곧 중단된다. 그러나 수십 년간 시설에서 살았던 탈시설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데 2년은 너무 짧다. 이들이 충분히 지역사회에 정착할 때까지 고려해 기간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 장애인 자립생활 근간인 센터 확충, 인건비 예산 확대 필요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센터) 예산 확충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서울시 지원 센터는 55개로, 당초 2022년 53곳 지원을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신규지원을 시작한 소수육성형(발달, 시각) 센터 4곳을 제외하면 51곳으로 내년 2곳이 추가돼야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 센터 지역 분포도 고르지 않다. 금천구, 서대문구, 서초구, 용산구, 중구 등은 지원 센터가 1곳씩밖에 없다.
특히 센터의 내실화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건비 지원은 2년째 6명에 멈춰있다. 현재 내년도 예산에도 인건비 지원이 동결되어, 인건비 지원을 7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사실상 좌초됐다. 서울시는 내년도 센터 운영실태에 대한 연구용역을 통해 예산 확대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형숙 회장은 “이미 2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증명된 센터의 역할과 기능을 이 시점에서 재점검하는 저의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에게 탈시설은 ‘자유로운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내가 살면서 가장 잘 선택했던 일이고 내게 허락된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여가생활 중 종교생활, 영화관, 스포츠경기 관람, 동네친구들 자주 만나는 것을 나의 선택에 의해서 자유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늦잠 자는 것인데 아주 꿀맛입니다!” (탈시설 장애인 김진균 씨, 이음센터 활동가)
김진균 씨는 탈시설 후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가하며 “성취감과 권익옹호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처럼 탈시설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음센터와 같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역할이 크다. 특히 이음센터는 10년 전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모임 ‘탈각’을 토대로 만들어진 곳으로, 탈시설운동의 거점으로써 역할을 해왔다.
이음센터 전 소장이기도 한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서울시뿐 아니라 이음센터가 있는 영등포구에서도 탈시설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 ‘구비’ 추가시간 확대와 자립생활주택 운영·지원비의 지속적인 확대 운영을 해야 한다”라며 “탈시설장애인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지역주민의 시선이나 차별적인 말을 들었을 때다. 자립생활주택이 있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 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울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의지 예산으로 보여야
서울시가 시설범죄에 더욱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2020년 서울시 관할 장애인거주시설 가평 루디아의집이 시설폐쇄와 법인설립허가 취소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루디아의집은 과거에도 숱한 인권침해로 최근 6년 간 시설장 교체 행정처분만 두 번 받은 전력이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16년 서울시 기본인권증진계획을 통해 약속한 ‘원스트라이크아웃제’가 적용됐더라면 인권침해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대부분 시설에서 인권침해와 학대는 단순한 현상이 아닌 응축된 범죄의 분출이다. 시설범죄 중 특히 거주인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단호히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등 강한 행정처분이 요구된다”라며 “루디아의집이 폐쇄된 후 80%가 다른 시설로 전원되었는데, 거주장애인의 삶이 지역사회에서 영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자체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CRPD)의 정신에 부합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이행도 강조됐다.
정혜란 한국장애포럼 활동가는 “헝가리의 경우 지난 2012년부터 대형시설 장애인을 소규모 그룹홈으로 이전시키는 전략을 개시했다. 또 대형시설 법인이 그대로 소규모 시설을 운영했다.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 이에 헝가리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직권조사를 받고 있다”라며 “반면 뉴질랜드의 킴벌리센터의 경우는 13년에 걸친 시설폐쇄 과정에서 민관이 함께 50여 차례의 간담회를 열며 시설폐쇄를 강력하게 국가가 주도했다. 시설폐쇄 후 시설 거주인뿐 아니라 그의 가족, 직원들, 지역주민의 탈시설 인식이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 CRPD를 제대로 이행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혜란 활동가는 “킴벌리센터의 사례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탈시설에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CRPD 선택의정서 비준을 앞두고 있는 만큼 국내법과 동일하게 CRPD를 기준으로 삼아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의지는 예산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년도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은 삭감되거나 동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서울시에서 탈시설 정책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은 “서울시가 최초로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에만 만족하거나 최고의 목표인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정책뿐 아니라 주거, 교육, 의료 정책이 시장이 바뀌고 나서 방향이 선회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라며 “10년 동안 싸워온 부분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서울시가 예산으로 의지를 나타낼 수 있도록 시민들의 정치 개입이 매우 절실한 때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