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KBS 본관 정문 앞에서 KBS 뉴스9에 수어통역방송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태순 서울농아인협회 금천지부장이 ‘KBS의 9시 뉴스 프로그램에 수어통역을 실시하라!’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낮에는 일을 해서 저녁에 KBS 뉴스를 봅니다. 그런데 자막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흐름을 놓칩니다. 그럴 때마다 절망합니다. KBS에 항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농인들이 KBS 종합뉴스에 수어통역 제공과 다양한 수어통역 방송 편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아래 장애벽허물기)' 등 10여 개 단체는 14일 KBS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합뉴스에 수어통역 제공과 다양한 수어통역방송 제작을 촉구했다. 정부에는 장애인방송 의무편성률을 30%까지 늘리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고 있는 KBS가 앞장서 메인뉴스인 '뉴스9'에 수어통역을 편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14일 KBS 본관 정문 앞에서 농인과 10여 개의 단체가 ‘KBS는 9시 뉴스에 수어통역을 실시하라’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KBS는 공영방송으로 수어통역방송 의무편성을 잘 지키고 있지만, 여전히 9시 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며 "공영방송 뉴스는 그 어떤 정보접근의 문제보다 중요성을 띤다"는 점을 강조했다.
농인 임영수 씨는 "저와 같은 농인들에게 KBS 뉴스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답답하고,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뉴스"라며 "방송에서 자막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수어가 제1언어인 농인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농인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발언자들은 현재의 상황은 한국수화언어법(아래 한국수어법)이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등에서 명시하는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정환 서울농아인협회장은 "한국수어법은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이고, 농인과 한국수어 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입법 목적으로 한다고 하는데, 수어방송은 하루에 고작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제공하고 있어 농인은 방송시청권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석 자립생활지원센터WITH 활동가는 "우리나라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돼 있는데, 이 협약의 기본 취지는 인간으로 누려야 하는 것을 장애인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정보접근권과 의사소통권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김주현 장애벽허물기 대표,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처장, 김정환 서울시농아인협회장이 KBS 측에 요청서를 전달하고 있다.
방송사의 농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의지 결여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지난 2018평창동계올림픽 때도 수어통역방송을 제공한 방송사는 극히 적었고, 제공하더라도 방송에서 일부만 제공했다. 농인들의 진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하자 그제야 방송사들은 수어통역화면을 내보냈다. 발언자들은 농인의 수어통역 요구가 있을 때마다 방송사들은 ‘자막방송 제공과 화면의 제약성’을 근거로 수어통역방송 제작을 미뤘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처장은 "평창동계올림픽 때 농인들의 인권위 진정을 보고 한국어와 수어가 다른 언어임을 비로소 알게 됐다"며 "방송사들도 이런 무지에서 수어통역방송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지만, 자막방송 제공이나 화면의 제약성은 청인 중심의 사고라는 것을 알리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KBS 측에 △메인뉴스인 '뉴스9'에 수어통역 제공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방송법 준수 △수어통역방송 비율 30%로 향상 △국가행사에 수어통역 제공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요청서를 전달했다.
이들 단체는 앞으로 농인의 영화 접근성 등에 대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개선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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