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 정신건강사업과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정신질환 혐오를 부추기는 언론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를 제재할 구체적 방법으로 언론보도준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근 끓어오르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관련해 방송∙언론보도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는 정책간담회가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립정신건강센터, 한국정신장애연대 공동주최로 5일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극장에서 열렸다.
- 정신질환과 범죄 연관 지어 ‘추정’으로 보도하지 말아야
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 정신건강사업과장은 4월 경남 진주 방화∙폭행 사건 등 최근 언론이 ‘조현병’을 제목에 언급하는 보도가 늘어나고 있음을 소개하면서 언론이 객관적인 근거 없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조근호 과장은 “언론사는 기사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제목을 강하게 부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정신질환과 폭력을 연관 지어 전달하면 대중의 공포심만 극대화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주어 환자의 지역사회 적응을 저해하고 정신질환 및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확산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경고했다.
조 과장은 캐나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해외 언론보도준칙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도 정신건강 관련 언론보도준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 국가는 언론보도준칙에서 정신질환으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암시하지 말 것과 ‘조현병’ 등 정신건강 및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찍는 표현을 피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조 과장은 수사 관련 기사를 다룰 때 “범죄와 정신질환의 연관성 여부를 ‘추정’ 상태로 보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다시 말해 정신질환자 관련 정보를 경찰 또는 수사기관의 추정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여 보도하면, 독자는 그 범죄를 정신질환자의 범행으로 규정하고 확대하여 해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또 “지상파 3사의 정신질환 관련 TV 뉴스 기사를 내용 분석한 연구(조수영, 김정민, 2010)에 따르면, 분석 기사의 13.6%만이 정신질환의 치료 방법을 언급했다”라며 더 많은 언론사가 정신건강 보도를 다룰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환자의 질병 완화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조 과장은 "정신질환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이해하고 보도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신건강 보도를 다룰 때 정신질환자의 인권 문제에 대한 감수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신질환 평생유병률은 25.4%(보건복지부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로 정신질환은 일부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니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사무처 팀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 정신건강 보도준칙 개발뿐 아니라 꾸준한 모니터링 필요해
최원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아래 지원단) 사무처 팀장은 지원단에서 네이버(NAVER)의 뉴스 검색 서비스 제휴사 중 지역지를 제외한 437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2018년 3월 5일부터 2018년 11월 23일까지 9개월간 보도한 기사를 분석한 내용을 소개하며 언론의 균형 있는 시각을 강조했다.
분석내용 결과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비하 표현 등을 사용하는 기사는 많지 않으며, 부정적 논조를 가진 보도 또한 전체 보도의 7.1%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원화 팀장은 “실제로 기사를 읽은 독자의 감정유형을 살펴보니 정신질환, 특히 조현병 관련 보도에 있어 중립적 논조를 가지면서도 부정적인 정보를 선택적으로 제공하거나, 정신질환이 언급된 사건을 반복 보도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보도 경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최 팀장은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이 개발되더라도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가이드라인을 지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체계가 되어야만 진정으로 사회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면서 “언론뿐 아니라 미디어 가이드라인 개발과 함께 전체 미디어에 대응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까지 갖춰야 한다. 모니터링할 때는 단순히 부정적인 표현뿐 아니라 맥락을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관련해 방송∙언론보도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는 정책간담회가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립정신건강센터, 한국정신장애연대 공동주최로 5일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극장에서 열렸다. 사진 박승원
- 정신질환 범죄 사건 발생할 때 전문가뿐 아니라 당사자 목소리 귀 기울여야
이날 토론회에는 현장 기자들이 정신질환 보도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강혜민 비마이너 기자는 ‘정신질환자 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 언론에 등장하는 이는 대부분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정신과 의사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는 이들을 치료하는 전문가이지 당사자가 아니다. 강제입원∙강제치료가 횡행한 현실에서 의사와 당사자의 입장은 많은 경우 대립한다”라며 “그런데 언론은 주로 전문가의 발언만 실을 뿐, 정신장애인 당사자 집단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강 기자는 “보도준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언론사와 기자로서 품위가 손상되는 중대한 행위라고 인식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심층적인 보도를 위해 각 언론사마다 장애∙빈곤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소수자 부서를 만드는 게 어떨까”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배양진 JTBC 기자는 "정신장애인의 타자화를 피하려면 범죄뿐 아니라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배 기자는 “정신장애와 관련한 사회 문제는 범죄만 있는 게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재활서비스의 범위, 당사자와 가족이 처한 경제적 문제, 정신장애인이 당하는 차별과 소외 등 인권, 회복, 생활과 관련한 문제가 여전히 많다”라며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면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은 영원히 타자일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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