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의 의미와 과제 ②
장애인 권리 침해됐을 때 구제할 수 있는 내용 빠져
당사자 참여 전제로 정책 고도화하는 체계는 복지부가 반대
탈시설 논쟁 심했지만, 핵심 내용 빠진 ‘탈시설화’로 삽입
편집자 주
장애계가 염원하던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됐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들을 법률로 규정하고, 권리보장을 위한 전달체계를 다룬 이 법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철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독자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이에 비마이너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의 내용을 작성하고, 제정을 위해 활동해왔던 김기룡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위원장을 만났다. 그리고 제정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의의와 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물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제정은 시작일까, 아니면 끝일까. 이번 인터뷰 기사는 총 세 편으로 나누어 발행된다. 1편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갖는 의미와 성과를, 2편에서는 제정된 법의 한계와 후속과제를, 3편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에 따라 전부개정이 필요한 장애인복지법을 다룬다.
①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차별 철폐 위한 중요한 도구
②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됐다고 끝 아냐… 빠진 내용 많아
국회에서 통과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참 오래 걸렸다”라며 “법 제정은 마침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성안 작성에 참여하고, 제정을 위해 활동해 온 김기룡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위원장 역시 비마이너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장애인 권리 보장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조율하는 과정에서 애초 장애계가 요구했던 내용들이 대거 삭제되거나 축소되어 반영됐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 축하할 일이라면서도 이 법에 포함되지 못한 내용들과 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보완책을 천천히 설명해 나갔다.
완결성 있는 법 되려면 ‘권리 구제’ 내용 있어야
김 위원장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완결성을 갖기 위해서는 권리 구제와 관련된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제정안에는 “학대에 대한 권리 구제, 서비스에 대한 권리 구제가 빠져 완결성이 떨어진다”며, 현재 법은 ‘선언문’에 불과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 위원장은 학대와 서비스 제한 등 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 방안을 갖추지 못한 것을 가장 우려했다.
먼저 김 위원장은 학대 사건 해결과 관련해 “학대 사건이 발생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고,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벌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분리와 함께 적극적으로 보호 조치를 제공해 주고, 그렇게 하려면 누가 잘못했는지를 조사해야 되고 잘못한 것에 대해 처분도 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이를 담당하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수사권과 처분권이 없어 수사는 경찰에 의뢰하고, 처분은 경찰이나 지자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권익옹호기관 P&A(Protection&Advocacy)는 변호사가 100명이 있고 조사권과 처분권이 다 있다”며 “불시에 방문하고 (조사에) 협조를 해주지 않는 사람은 처벌을 받는 강력한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에는 담았는데 제정 과정에서 다 빠져버렸다”며 “그러니까 (한국은) 학대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권리옹호가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서비스에 대한 이의 제기 조항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장애인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비스 적격성과 양이 결정되어 왔다. 하지만 그 때 공식적으로 이의 신청할 수 있는 절차가 현재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대 사건에 대해서만 권리를 보호할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서비스와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행정적인 결정에 의해 피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줘야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장애인권리보장법에 이 두 가지의 권리 구제 방안이 빠진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을 개정하거나, 별도 법을 만들어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 관련 정책, 당사자의 참여와 체계적 연구 필요해
당초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에는 장애 정책 추진체계를 재편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사자의 참여와 권한을 전제로 장애인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인위원회’, 권리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사정하고 제공하는 ‘장애인권리보장원’, 국가의 장애 관련 정책을 설계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국가장애연구원’ 설치가 그 내용이다.
하지만 이 내용 중 장애인권리보장법에 명시된 것은 ‘장애인권리보장원’뿐이다. 이마저도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한국장애인개발원을 한국장애인권리보장원으로 개편하는 데 그쳤다.
이에 김 위원장은 “장애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장애인과 장애인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그걸 듣게 하기 위해서 별도의 위원회나 시스템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한다”며 “(현재)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국무총리 산하에 비상설적 기구로 있지만, 정부가 하고 싶을 때 여는, 그런 기구”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장애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느냐”가 관건이라며, “상설기구로, 장애인과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인데 그런 권위가 부여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는 국가장애연구원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은 “미국 「발달장애인법」에 보면 발달장애 연구기관을 전국에 4개 정도 설치하도록 돼 있다”며, 위스콘신 대학 발달장애 국가연구센터 방문기를 전했다.
“거기에 연구원이 몇 명 있냐면, 박사급 연구원 100명이 있어요. 발달장애 재난 연구하고, 뇌과학 연구하고. 그러니까 발달장애 관련 의사도 오고, 심리학자도 오고, 통계학자도 오고 심지어 소방 전문가도 다 와가지고, 연구물을 생산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발달장애 정책이나 제도가 한국의 정책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김 위원장은 “장애 정책은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한다”며 장애인개발원이 연구를 일부 수행하기도 하지만 “장애인개발원은 복지부와 관련된 것만 있다. 범부처 성격을 가지고 다학제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그런 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책 추진체계 개편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은 ‘복지부의 반대’가 주요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장애인정책위원회를 보면) 대통령이 직접 집행해야 할 정책으로 안 보는 것 같다”며 “여전히 ‘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비주류다’라는 것으로 정부 관계자도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탈시설 논쟁되며 다른 논의 부족했는데, 그마저…
김 위원장은 탈시설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사항임에도 불필요하게 논쟁이 되며, 국회와 복지부가 탈시설 외의 다른 사안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탈시설화’로 변경되어 잘못된 의미로 장애인권리보장법에 포함된 것에 대해 성토했다.
“원래 탈시설은 시설 폐쇄를 전제하는 겁니다.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보면 시설 수용은 인권침해이자 범죄다, 인권침해 공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거기 있는 사람은 무조건 나와야 하고 그런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공간은 폐쇄되는 게 맞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 대한 자립적 대책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걸 전제하고 만들어지는 게 탈시설인데, 그런 개념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논의될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탈시설화’는 시설 폐쇄나 시설에서 나와 사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남”이라고 설명돼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탈시설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눈치를 보고 그렇게 써준 것”이라며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지역사회) 강제 전환 그리고 신규 입소 금지와 같은 강력한 내용을 담은 탈시설 관련 별도 입법을 마련해야 후속 정책들을 더 강력하게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절충되고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상대측에서는 ‘시설 폐쇄를 뜻하는 건 아니지 않냐’라며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낼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