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에는 면적·시기기준 폐지 등 담겼었는데
통과된 권고에는 보건복지부 ‘재검토’로 후퇴
유니버설디자인 주무부처도 변경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정부 부처에 장애인 접근권 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를 의결했지만, 장애계는 당초 인권위 사무국의 원안보다 후퇴된 안이라며 인권위 상임위원들을 비판했다.
인권위는 16일 제24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공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의 건’을 의결했다.
이번 권고는 지난 2025년 인권위와 사단법인 두루가 실시한 ‘공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 보장 모니터링’ 연구를 토대로 마련됐다. 당초 인권위 사무국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면적기준과 시기기준 폐지 등을 담은 원안을 마련했지만, 상임위원회 논의를 거치며 일부 내용이 ‘재검토’로 수정되는 등 축소돼 장애계의 반발이 커졌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장애인권단체들은 20일 성명을 내고, “이는 부처가 ‘검토하였으나 현행 유지가 타당하다’는 한 줄의 답변으로도 이행을 주장할 수 있는,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권고”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위헌이라고 결정했는데 재검토에 그친 권고
현행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에서는 일정 기준 이상의 면적을 갖추거나, 법이 정한 시기 이후 세워진 건축물에 대해서만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주어진다.
특히 장애인권단체들은 이미 대법원이 정부가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는데도, 인권위가 이보다 낮은 수위의 권고를 내린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202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제약하는 규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그 결과 장애인의 고통은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며,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한편 단체들은 유니버설디자인과 관련해 권고 이행 주체를 국토교통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로 변경한 것도 문제라고 제기했다.
단체들은 “건축정책과 건축기준을 관장하는 주무부처는 국토교통부장관”이라며 “그럼에도 접근권 증진시설의 통일된 지침 마련과 교육 등 대안을 보건복지부가 마련하고 국토교통부에 협조를 요청하도록 한 것은 권한 없는 부처에 책임을 지우고 권한을 가진 부처는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처 의견 낼 시간 충분히 줬는데도 거절한 정부
단체들은 이번 인권위 상임위의 권고 논의 과정에서 정부 부처들이 보인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인권위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인권위가 권고를 내린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행정안전부는 두 차례에 걸친 인권위의 사전 의견 요청에 모두 회신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지난 5월에도 해당 안건을 상정해 논의했으나, 각 부처의 의견 회신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권고 결정을 미뤄왔다. 이후 인권위가 다시 의견을 요청했지만 끝내 어느 부처도 답변하지 않았다.
단체들은 “결국 (5월 이후) 두 달의 연기는 부처의 묵살을 재확인하는 시간에 지나지 않았고, 권고가 절실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시간만 허비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후퇴한 권고가 차별의 면죄부가 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