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 민간 주거복지센터와 협의 없이 계약해지 통보
해고 예상자만 100여 명… 고용승계 지침도 어겨
현장 혼선과 복지 공백 우려 “피해는 고스란히 주거약자가 볼 것”

기자회견 현장. 노란색 현수막 뒤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서 있다. 현수막에는 빨간색 글씨로 ‘오세훈표 주거약자 말살정책 즉각 중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기자회견 현장. 노란색 현수막 뒤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서 있다. 현수막에는 빨간색 글씨로 ‘오세훈표 주거약자 말살정책 즉각 중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시 주거복지 업무를 위탁받은 16개 비영리 민간법인 주거복지센터 직원 100여 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거복지센터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모든 업무를 서울주택도시공사(아래 SH)가 수행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애인, 빈민 등 주거약자가 밀착지원을 받던 주거복지에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서울시 16개 민간 주거복지센터 직원 100여 명은 2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을 향해 “주거복지센터 계약해지 결정을 철회하라”라고 요구했다.

서울시청 앞 선별진료소 앞을 꽉 채운 기자회견 참가자들. ‘주거복지 전달체계 붕괴하는 서울시는 각성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 하민지서울시청 앞 선별진료소 앞을 꽉 채운 기자회견 참가자들. ‘주거복지 전달체계 붕괴하는 서울시는 각성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 하민지

- 2000년대부터 주거복지 기틀 다져온 16개 민간 센터

현재 서울시에는 25개 주거복지센터가 있다. 이 중 16개는 민간법인이, 9개는 SH가 운영하고 있다. 주거복지센터가 최초 운영된 시점은 2012년이다. 민간 주거복지센터는 2000년대부터 활동가와 사회복지사가 자생적으로 지역사회 주거지원을 하고 있었고 이것이 2012년 주거복지센터 건립의 시초가 됐다고 설명한다.

당시 활동가와 사회복지사는 1990년대의 재개발 바람으로 생겨난 철거민과 IMF 외환위기 이후 빈곤에 처하면서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으로 내몰린 주거약자를 지원했다. 2000년대 들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생겨나긴 했지만 제도가 생소하고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도 안 돼서 신청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활동가와 사회복지사는 주거약자에게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반찬 봉사를 하는 등 자발적인 지원을 이어갔다.

하지만 민간이 모든 주거약자를 지원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정책과 주거약자를 잇는, 제대로 된 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6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 더 활발한 지원을 이어갔다. 더욱 많은 주거약자를 만나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전달체계의 기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서울시와 여러 차례의 면담을 통해 심각한 주거위기에 대한 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런 과정을 토대로 2012년, 서울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서울시 주거복지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가 제정되면서 주거복지센터가 만들어졌다. 그간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해오던 주거복지가 서울시 차원에서 공식화했다. 10개 센터로 출발한 주거복지센터는 현재 25개가 됐다. 정두영 관악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6년간 민간재원을 동원해 주거복지의 필요성을 알렸다. 우리 활동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렸고 2012년, 공공이 우리 활동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민간 주거복지센터는 서울시 예산과 각 센터에서 발로 뛰어 모은 후원금으로 주거위기에 놓인 취약계층의 긴급주거비를 마련하고, 주거약자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주택을 물색하며, 전월세 계약이나 수급비 신청 시 동행하는 등 1:1 밀착지원을 진행했다. 임차료·임대보증금·이사비·연료비·집수리 등 지원, 임차권 옹호 활동, 주거실태 조사, 주거지원 정책 교육 등 다양한 지원도 이뤄졌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각 지역 주민센터에 주거위기 관련 상담이 들어오면, 주민센터에서 연결해 주는 곳이 주거복지센터”라고 말했다. 그만큼 지역주민과 공공기관 관계자에게 신뢰를 받았다.

민간법인이 운영하던 주거복지센터를 SH도 운영하게 된 건 2018년이다. 민간 주거복지센터에서 먼저 요청한 일이었다. SH에서 임대주택 공급만 하지 말고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과 살게 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고, 공공이 나서서 주거복지에 개입하라고 요청했다. 이후 서울시에서 주거복지센터 운영기관을 공모할 때 민간법인, SH 모두 신청서를 냈고 경쟁을 거쳐 민간법인이 16개 센터를, SH가 9개 센터를 운영하게 됐다. 정두영 센터장은 “SH도 기존 민간 주거복지센터가 다져놓은 기틀을 토대로 주거복지를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두영 센터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 센터장 뒤로 서울시청 간판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구조조정이라 생각하세요. 시장님 성격 모르시나요?”

오세훈 시장 공약 중 하나는 1인 가구 지원 사업이었다. 서울시는 공약 이행을 위해 지난 4월부터 16개 민간 주거복지센터와 회의를 진행했다. 7월에는 센터당 2명씩 추가 채용을 지시했다. 9월 중순경, 총 32명이 새로 채용됐다. 오 시장 취임 후 진행된 대대적인 회계감사, 성과평가 등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9월 추석 연휴 직전, 신규 인력이 채용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민간 주거복지센터와의 재계약이 일괄 철회될 예정’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 이후 오 시장이 지난달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SH가 민간법인보다 (주거복지센터 운영을) 월등히 잘하니 SH가 모두 운영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계약해지를 공식화했다. 김완수 영등포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센터 측과 어떤 협의도 없이 통보된 사항”이라고 말했다.

2022년 서울시 예산안을 확인해 보니 16개 민간 주거복지센터에는 약 11억 원, SH에는 약 64억 원이 책정됐다. 김송희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상임대표는 “11억 원을 16개 센터가 나누면 3개월밖에 운영을 못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1~3월 안에 정리하라는 소리다”라고 성토했다.

이 경우 대량 해고가 예상된다. 서울시에는 운영법인이 변경될 때 기존 인력의 80%를 고용승계한다는 지침이 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25%까지만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16개 센터의 해고 예상자만 100여 명이다. 고용승계 25%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비마이너가 이를 문의하기 위해 서울시에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김완수 센터장은 “오 시장이 1인 가구 지원 공약 이행을 위해 채용한 32명은 몇 개월 일하지도 못하고 나가게 될 수도 있다. 이게 말이 되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민간 주거복지센터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서울시 담당자에게 대화를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명령과 협박뿐이었다. 서울시 주거복지팀 ㄱ 팀장은 ‘시장님 방침이다. 구조조정이라 생각하라. 민간법인이 운영하는 센터에서 잘못한 거 없고, 결격사유도 없고, 민원조차 없었던 거 안다. (재계약 철회에 대한) 합리적 근거는 없지만 시장님 방침이 그렇다. 받아들여라’라고, 주택정책과 ㄴ 과장은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 하면 내년도 없고 올해 12월로 끝날 줄 알아라. 시장님 성격 모르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두영 센터장은 “서울시가 비민주적으로 결정해 통보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참석자. 그가 들고 있는 피켓에 ‘주거약자도 서울시민이다. 서울시민 기만하는 오세훈은 물러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현장 혼선, 주거복지 공백 우려

더 큰 문제는 주거복지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 주거복지센터는 아동주거빈곤가구, 화재 등 재난으로 인한 임시거처 필요가구 등을 위해 LH 장기미임대 주택을 활용한 긴급지원주택 사업을 제안하고 2016년부터 운영해 왔다. 2019년에는 아름다운재단 공모사업으로 1억 원을 지원받아 긴급지원주택 10개소를 추가 확보했고 2021년 현재 41개소를 운영 중이다. 민간 주거복지센터 측은 “많은 자원과 노력을 들여 마련한 긴급지원주택 사업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다. 그 피해는 서울시 주거약자들이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16개 중 8개 센터는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주거약자에게 적정주거를 지원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안정적 주거지로 입주한 주거약자는 지난 8월 기준으로 595명이다. 2022년까지 1,500여 명이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SH 주거복지센터에서 이 사업을 수행하는 곳은 3곳뿐이다. 민간 주거복지센터 측은 “이 사업이 중단되면 수많은 주거약자가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SH 내부에서도 16개 민간법인이 하던 사업을 SH가 다 감당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장님 결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강행하려는 듯 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복지를 공공이 주도하는 게 안정적이지만 이런 식의 비민주적인 통보 방식은 현장 혼선과 복지 공백만 불러일으킨다는 의견도 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서울시는 16개 센터 측과 충분히 협의하고 고용승계를 했어야 했다. 오 시장이 ‘시민단체형 다단계’라 비난하며 시민사회 영역을 이렇게 갑자기 축소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거약자가 떠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6개 민간 센터 측은 기자회견 직후 서울시의회에 오 시장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노식래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은 “시민사회가 시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이 가야 할 길임에도 오 시장은 시민을 몰아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시장 한 사람의 아집으로 서울시정 혼란과 시민 피해가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