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서 단 하루도 미룰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 한목소리
10만 국민청원에도 국회에선 차별금지법, 논의조차 안 돼 
여당은 대통령 말에 부랴부랴 ‘검토’, 야당은 ‘확고히 반대’

기자회견 전부터 경찰은 정기국회 중이라며 농성천막을 할 수 없다고 막았다. 몇십 분 간의 대치 끝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비닐을 둘러쓰고 기자회견을 열 수밖에 없었다. 비닐 천막에 비가 금세 고였다. 구멍 뚫린 비닐 천장에서 비가 떨어졌다. 어떻게든 비닐 천막을 지탱하려는 활동가. 사진 허현덕기자회견 전부터 경찰은 정기국회 중이라며 농성천막을 할 수 없다고 막았다. 몇십 분 간의 대치 끝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비닐을 둘러쓰고 기자회견을 열 수밖에 없었다. 비닐 천막에 비가 금세 고였다. 구멍 뚫린 비닐 천장에서 비가 떨어졌다. 어떻게든 비닐 천막을 지탱하려는 활동가들. 사진 허현덕
비가 오기 때문에 비닐과 파라솔만 반입할 수 있다던 경찰은 비닐도 파라솔도 안 된다고 말을 바꿔 대치가 이어졌다. 비닐 반입을 막고 있는 경찰. 사진 허현덕비가 오기 때문에 비닐과 파라솔만 반입할 수 있다던 경찰은 비닐도 파라솔도 안 된다고 말을 바꿔 대치가 이어졌다. 비닐 반입을 막고 있는 경찰. 사진 허현덕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해 범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았다. 차별금지법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기한인 11월 10일을 앞두고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이 시작됐다. 8일 오후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단’(아래 농성단)은 여의도 국회1문 앞에서 농성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 전부터 경찰은 정기국회 중이라며 농성천막을 칠 수 없다고 막았다. 한 시간의 대치 끝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비닐을 둘러쓰고 기자회견을 열 수밖에 없었다. 비닐과 파라솔은 반입할 수 있다던 경찰은 말을 바꿔 파라솔 반입을 막아 또 대치가 이어졌다.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중재에 나서 겨우 깔개와 파라솔만 반입할 수 있었다. 어렵게 만들어진 비닐 천막에는 비가 금세 고였다. 구멍 뚫린 비닐 천장에서는 비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늘 모인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까지 이곳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아래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은 “정기국회 중이라고 천막은 안 된다고 하는데, 정기국회 중이니까 더욱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천막농성을 하려는 것이다. 국회가 국민의 말을 안 듣겠다는 말인가? 국민의 말을 들으라고 여기에 모인 것이다”라고 성토했다. 

차별금지법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기한인 11월 10일을 앞두고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이 시작됐다. 사진 허현덕차별금지법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기한인 11월 10일을 앞두고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이 시작됐다. 사진 허현덕

- 10만 국민청원에도 국회에선 차별금지법, 논의조차 안 돼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차별금지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밖에도 21대 국회에서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권익숙 의원 대표발의)’, ‘평등에 관한 법률안(박주민·이상민 의원 대표발의)’ 등 총 4건의 차별금지법(평등법)이 발의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못했다. 이처럼 차별금지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민이 나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실었다. 지난 6월 14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차별금지법안이 법사위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9월 11일로 예정됐던 심사는 60일 뒤인 11월 10일로 미뤄졌다. 현재 심사 기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농성단은 차별금지법 심사를 조속히 이행해 연내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천막농성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해 이종걸, 미류 차제연 활동가는 부산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이 연내 제정을 외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17대 국회(2007년)부터 19대 국회까지 꾸준히 발의됐으나, 발의한 국회의원이 자진 철회하거나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무려 14년간 발의와 폐기만 반복했다.  

고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차별금지법 투쟁이 14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 사회를 차별없는 사회로 만들겠다는 약속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누군가는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다’ ‘동성혼 전 단계의 법이다’라고 하는데,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 만들어지면 왜 안 되나”라고 성토했다. 

고운 집행위원의 말처럼 정부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렵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이에 2017년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한국정부의 의견에 우려를 표하며, 차별금지법을 긴급하게 채택하라고 권고했다. 

조혜인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조혜인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 여당은 대통령 말에 부랴부랴 ‘검토’, 야당은 ‘확고히 반대’

국제사회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도 2006년, 2020년, 2021년 세 차례에 걸쳐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혜인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은 거대 양당의 의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제연은 지난달부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해 질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7일 청와대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차별금지법을 검토할 단계”라고 말한 것을 의식해서인지, ‘진지하게 내부 논의 중’이라고만 답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공식적인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조혜인 공동집행위원장은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론이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인데 토론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차별하지 말자는 법, 국가와 지자체가 평등을 약속하는 법을 반대하는 게 정녕 국민의힘 당론인가? 그러면서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것인가”라며 “국민의힘은 차별과 혐오의 정당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지금이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내부 논의를 한다고 밝혔는데,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라 법 제정을 해야 할 때다. 이미 너무 늦었다.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힘줘 말했다. 

김도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토론도 하지 않고 흑색선적과 왜곡·혐오를 조장하는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차별주의자, 반평등주의자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비닐과 파라솔만 반입할 수 있다던 경찰은 파라솔도 안 된다고 말을 바꿔 또 대치가 이어졌다. 사진 허현덕비닐과 파라솔만 반입할 수 있다던 경찰은 파라솔도 안 된다고 말을 바꿔 또 대치가 이어졌다. 사진 허현덕
비닐과 파라솔만 반입할 수 있다던 경찰은 파라솔도 안 된다고 말을 바꿔 또 대치가 이어졌다. 사진 허현덕비닐과 파라솔만 반입할 수 있다던 경찰은 파라솔도 안 된다고 말을 바꿔 또 대치가 이어졌다. 사진 허현덕

국회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법사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차별금지 관련 주요 현행법인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양성평등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이 차별의 한 영역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장애계(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이주노동자계(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조합 위원장), 여성계(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도 참석해 ‘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편, 농성단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회 앞을 지키겠다는 계획이다. 농성단에는 9월 말 기준 161개의 범인권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애초 천막농성을 계획했으나 비닐 반입만 허용됐다. 활동가들과 비닐과 비닐을 고정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애초 천막농성을 계획했으나 비닐 반입만 허용됐다. 활동가들과 비닐과 비닐을 고정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비닐 천막을 지탱하려는 활동가들. 사진 허현덕비닐 천막을 지탱하려는 활동가들. 사진 허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