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보장법안+장애서비스법안’을 하나의 세트로 준비
권리보장과 서비스 지원 내용, 각 개별 법안으로 쪼개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한 장애서비스법안 예고
막대한 재원 조달방식, 장애등록제 폐지 등은 쟁점으로 남아
장애계가 오랜 시간 그려온 장애인권리보장법(아래 권리보장법)은 어떤 모습일까. 권리보장법 제정안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주최로 18일 오후 2시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권리보장법 제정을 지속해서 요구해온 전장연이 법안의 초안을 공개했다.
2012년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권리보장법 필요성이 대두됐다. 당시 20대 국회에서 3건이 발의되었으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후보 시절 권리보장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 100대 국정과제에 이를 포함했으나 속도는 매우 더뎠다. 2020년 8월에야 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민관협의체가 구성되고 올해 2월부터 연구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장애계는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권리보장법안을 두 개의 법안으로 쪼갠 ‘권리보장법안 세트’를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 권리보장에 관한 내용을 담은 ‘권리보장법안’과 장애인복지법을 전면개정하여 장애인서비스 관련한 내용을 담은 ‘장애서비스법안’이 그것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20대 국회에 발의되었던 권리보장법안은 기존의 장애인복지법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권리보장법 내용을 섞어놓다 보니 매우 뚱뚱한 법안이 됐다”며 두 개의 법안으로 나눈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권리보장법은 장애를 보호·재활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시절을 지나, 권리·자립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수립하는 시대에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과거 장애계만의 논의로 보였던 이 법안은 이제 정부 차원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지난 2일,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권리보장법 제정과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 추진 방안이 논의되면서 정부도 권리보장법안 제정에 의지를 보였다. 그러니 장애계의 오랜 바람이었던 권리보장법은 아마 제정될 것이다. 다만 명칭만큼이나 알맹이도 내실 있게 제대로 된 내용이 담기느냐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 장애인권리보장법안 : 장애를 ‘사회적 개념’으로 넓히고 재원 확보 방안 명시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장연 정책위원장인 김기룡 중부대학교 교수가 두 법안의 방향과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총 6장 111조로 구성된 권리보장법안은 기본법적 성격을 가진다. 법안에서 특히 강조하는 4대 핵심 내용은 △장애에 관한 사회적 개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의거한 장애인의 권리와 책무 규정 △장애인 지원 체계 강화 △재원 확보 방안 명시이다.
장애를 의료적 손상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관점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권리보장법은 장애를 개인의 특성과 사회·환경 간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한다고 정의하면서, 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만이 아닌 장애로 인해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필요한 지원을 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장애계가 지속해서 요구해온 맞춤형 복지실현을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장애인의 권리와 정부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적절한 사회보장을 지원받지 못했을 때는 지역장애인위원회를 통해 서비스 이의 신청을 할 수 있게 한다.
권리보장을 위해 법안에선 네 가지 개별 기구를 설치하여 고도화된 지원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장애인이 직접 정책 추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통령 산하 상설기구로 ‘국가장애인위원회’를 설치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공적 서비스 전달을 위해서는 ‘국가장애인서비스공단’을 설립한다. ‘장애인권리옹호센터’는 현재의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모습에서 조사권을 부여하고 후속조치까지 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여 권리구제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도록 한다. ‘국가장애연구원’은 장애인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관련 분야에 관한 연구개발을 한다.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되기 위해 예산 확보는 필수적이다. 김 교수는 “권리보장법안에서는 장애인의 필요 욕구를 고려하여 지역장애인위원회가 서비스의 양과 종류를 규정하는 모습을 제안하고 있다”면서 “소득 보장, 24시간 활동지원과 주간활동서비스, 완전한 무상의료 등으로 다른 부처와의 추가 소요까지 고려하면 적게는 7~8조, 많게는 20조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호주의 경우, 재원확보를 위해 국가장애인보험제도를 만들었다. 장애보험을 신설해 모든 국민이 낸 보험료를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별도의 장애보험을 신설하거나, 혹은 장애인복지특별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강한 조세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김 교수는 “재원 조달방안을 구체적으로 법률에 명시하는 게 필요하나, 이를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저항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장애서비스법안 : 장애등록제 폐지하고 ‘장애서비스 이용자’ 개념 도입
장애인복지법을 전면개정한 장애서비스법안은 6장 136조로 구성되어 있다. 법안에서는 장애인 등록제를 폐지하고 ‘장애서비스 이용자’ 개념을 도입했다. 마치 장애인특수교육법에서 장애 등록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특수교육대상자로 지정되면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장애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판정되면 장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장애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으며, 서비스의 종류와 양은 국가나 지자체가 아닌 시도 및 시군구에 설치된 지역장애인서비스센터가 결정한다. 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결정되면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서비스 제공기관을 연결받게 된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경우엔 불복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를 보장한다. 이러한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해선 다양한 공적 서비스가 마련되어야 한다.
김 교수는 “현재의 장애인복지법에는 개인에게 직접 지원되는 서비스는 별로 없고, 대부분 시설을 통해 지원된다. 그러나 서비스법안은 개인별 지원을 확대하는 형태다”라고 말했다.
이 법안에서는 장애등록제 폐지가 우려로 남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별도의 장애등록제를 실시하지 않고 서비스 이용 적격자로 선정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가 해외에 많다”면서 대표적으로 스웨덴, 미국, 영국, 호주 등이 있다고 밝혔다.
- 지역권리옹호센터·지역장애인위원회로 장애인 권리 보장 두텁게
김원영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권리보장법안의 권리옹호부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권리보장법안의 전체 방향에 대해 “기본법으로 입법이나 법률 해석의 근간이 되는 규범적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그러한 상징을 넘어 기존 법률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는 실효성 있는 법으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권리를 ‘자유권적 권리’, ‘사회권적 권리’로 나눠 설명했다. 자유권적 권리는 학대 등 가해를 받았을 때 침해받는 권리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와 장애인권리옹호기관 등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고 보장받을 수 있다. 반면, 사회권적 권리로는 대표적으로 활동지원제도 등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보장받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인권위 등은 자유권적 권리만 보장할 뿐 사회권적 권리는 보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필요한 만큼 활동지원시간이 나오지 않아 신체의 자유를 침해받았을 때, 즉, 사회권적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하지만 자유권적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에도 한계는 있다. 현재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경우, 형법상 범죄에 대해서만 가능할 뿐 다른 종류의 권리 침해에 대해선 조사권이 없다. 그래서 권리보장법에선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역할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인권위 역할 일부를 넘겨받아 ‘장애인권리옹호센터’라는 이름으로 그 역할을 확대했다.
김 변호사는 “지역 장애인권리옹호센터(아래 지역센터)가 현장조사, 응급조치, 피해장애인 사후 지원까지 하면서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안내, 상담,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맡게 된다”면서 “이를 통해 인권위는 정책 권고 등 중대한 차별에 대한 직권 조사에 집중하고, 지역센터는 개별 진정을 중심으로 사후 지원까지 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눌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권리 구제 기관이나 업무 과중으로 인해 처리 속도가 매우 느리고 정책 권고까지만 할 뿐 권고를 바탕으로 한 피해자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점을 지역센터를 통해 보완함으로써 장애인 권리 보장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회보장에 관한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이의신청을 하고 권리를 구제받는 방안도 새롭게 마련됐다. 최종 결정된 사회보장급여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고 싶을 때, 이에 불복하는 방법으로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 있으나 장애인이 활용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또한, 각 제도 내에 이의신청제도를 두고 있지만 해당 서비스를 판정한 기관 스스로 재심사를 하는 것이기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법률마다 이의신청 절차가 산발되어 있는 점도 장벽으로 존재한다. 이를 위해 권리보장법안에는 지역장애인위원회를 활용하는 방안을 담았다.
김 변호사는 “국가장애인위원회와 별도로 각 지역에 마련된 지역장애인위원회에서 사회보장급여 결정에 관한 조정 및 권고하는 역할을 추가했다. 장애인연금, 활동지원서비스 등의 급여결정에 대한 이의가 있을 때, 지역장애인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면 재검토를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위원회 구성원엔 장애인 당사자나 가족을 포함하여 사회보장결정에서 당사자성을 부과하기 위한 노력을 담았다.
그러나 한계점도 있다. 김 변호사는 “행정심판과 같은 사법절차 상의 위원회가 아니기에 기존 보장기관의 처분을 완전히 취소하거나 새롭게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특별행정심판위원회를 만들어 강제성을 갖게 하면 좋으나 그러기 위해선 행정심판법 등 여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보니, 과도기적 절충안으로 지역장애인위원회에 역할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 복지부 “기본 취지엔 공감하지만, 많은 논의 필요”
이번 안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기본 취지엔 공감하나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이선영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은 “권리보장법 제정에 대한 기본취지엔 공감하나, 오늘 발표엔 그간 검토되지 않았던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충분한 의견수렴과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장애인지예산(장애인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편성·집행하는 예산)은 국가 예산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장애인복지법을 넘어 국가재정법까지 논의되어야 하며, 장애등록제 폐지·재원 조달을 위한 장애보험 등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다른 부처의 반대가 있는 내용도 다수 있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기룡 교수는 “재원 조달방안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안, 국가회계법 개정안도 준비하면서 입법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면서 “상당한 정부 반대와 국민 반대가 있을 수 있으나 언제까지 활동지원 24시간 없이, 적절한 소득보장 없이 기본적 생활도 못 한 채 살아가야 하는가. 지금처럼 한정된 재원으론 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여 장애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애계는 오는 20일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연대를 출범한다.
기사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