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아닌 당연한 권리… 탈시설·이동권·평생교육 보장해야
OECD 국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장애인예산
국회·정부가 외면? 장애인들이 법과 예산 주도해갈 것!
장애인들이 정부와 국회에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대로 된 예산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12일 오후 2시, 여의도 이룸센터 ‘장애인권리보장법·장애인탈시설지원법 양대법안제정연대’ 농성장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코로나19 방역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코로나19 이후 갑갑했던 전국 장애인 5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 탈시설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현재 국회 앞 이룸센터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농성이 242일째 진행 중이다. 특히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작년 12월 10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 68명의 의원들이 발의해 현재 국회 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양대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아직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제 장애인거주시설은 더 이상 강화되어서는 안 된다. 탈시설은 권리다”라며 “탈시설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라며 탈시설 권리를 강조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많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죽었다. 그 이유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발달장애인을 시설이나 집안에 갇히게 하는 것은 국가 폭력이다. 발달·중증장애인을 위한 24시간 지원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으로 보장해야 한다”라며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했다.
- 우리는 특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이동권 보장해야’
지난 20년간 장애인들의 투쟁 끝에, 저상버스가 확보되고,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이 도입되었으며,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30% 미만이며, 특별교통수단은 법정기준대수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기준,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1역사 1동선이 100%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장애계는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를 의무로 도입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대표발의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과 지역 간 이동에 대한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대표발의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장애계는 결의대회를 하는 동안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버스타기 투쟁도 동시 진행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우리는 지금 오는 버스가 저상버스인지 일반버스인지, 예약한 장애인 콜택시가 언제 오는지 늘 걱정하면서 살고 있다”라며 “20년을 투쟁해왔다. 투쟁하니까 바뀌더라. 모두가 저상버스를 타고, 원하는 시간에 장애인 콜택시를 탈 수 있는 그 날까지 투쟁으로 이뤄나가자”고 결의를 다졌다.
이외에도 전장연은 장애인평생교육법 연내 제정도 촉구했다.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은 중학교 졸업 이하 학력이 전체 장애인의 54.4%에 달하며, 이는 전체 국민 중 중졸 이하 학력 12%에 비해 4.5배나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장애인은 정규 의무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평생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장애인에 대한 평생교육 지원은 지지부진하다. 이에 지난 4월 20일, 유기홍 전 교육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애계와 함께 장애인평생교육법을 대표발의했다.
- 국회·정부가 외면? 장애인들이 법과 예산 주도해갈 것!
이처럼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 반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2022년 정부의 예산안 기준, 장애인예산(장애인정책국 예산)은 3조 6천억 원이다. 이는 GDP 대비 0.6% 수준으로, OECD국가의 GDP 대비 장애인복지지출 평균(1.9%)의 3분의 1 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전장연은 정부에 내년도 예산으로 올해(2조 5,104억 원)보다 약 4조 9천억 원 증가한 약 7조 7천억 원의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부처별로는 △보건복지부 2조 4,326억 원(2021년)→7조 3,959억 원(2022년) △국토교통부 735억 원→3,028억 원 △고용노동부 28억 원→73억 원 △교육부 15억 원→193억 원 인상을 각각 요구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특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보편적인 삶을 가질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권 대표는 “우리가 1842일 동안 광화문에서 농성한 끝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정책을 더 앞당길 수 있었다. 그저 장애인들을 이익집단으로 치부하는 거대 양당에 경고한다. 이제는 우리가 대한민국의 장애인 법과 예산을 주도해가며 만들어 나가겠다”고 외쳤다.
- 모든 장애인을 위한 보편적 권리, 끝까지 투쟁할 것
이날 양대법안 농성장 앞 결의대회가 열리기 전, 결의대회 참가자와 이룸센터 입주단체 사이에는 마찰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룸센터에 입주해있는 한 장애인단체 회장이 차를 빼면서 이룸센터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결의대회 참가자들에게 “야 이 개새끼야, 왜 길 막아”라고 욕설을 한 것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동지들이 도착하기 전, ㄱ 회장이 하는 욕설을 직접 들었다. ㄱ 회장은 우리의 농성장이 불법건축물이라며 구청에 신고한 이룸센터 운영위원”이라며 “우리는 모든 장애인들의 보편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단지 자신 일정이 조금 늦어졌다고 해서 우리의 농성에 욕설을 할 수 있는가. 242일째 농성 중이다. 이 긴 시간동안 목소리를 내는 일은 정말 외롭지만,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할수록, 차별할수록 더 힘내서 같이 투쟁하자”고 외쳤다.
이룸센터는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모든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종합복지공간이지만, 최근 이룸센터 입주단체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구청에 농성장 철거를 요구하고 있어 ‘갑질 논란’이 제기되었다. 현재 이룸센터 17개 단체 중 16개 단체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아래 장총련),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원단체다.
한편,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 네 명이 국회의사당역 1번 출구 지붕에 올랐다. 이들은 ‘3대 법안 연내 제·개정’과 내년도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위해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농성 6시간만인 오후 5시 30분,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현장을 방문하면서 이들은 오후 6시경 고공농성을 해제했다.
심상정 대선 후보는 “민주노동당 첫 번째 법안이 장애인이동권(이동보장법) 법안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관련 법률은 통과됐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라며 “여러분들의 외침은 정당하다. (의정활동하며) 제가 대표 발의한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대통령이 되면 바로 이 법부터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