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역 9번 출구에 세워진 농성장. 이들은 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계획이 담길 때까지 계속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결의했다. 사진 허현덕
“우리의 요구는 단순 명료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3년 전 했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5년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하라고 외쳤던 광화문 농성장에서 우리는 다시 모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을 요구합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오는 29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를 앞두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계획을 담을 것을 촉구하며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23일 2시, 광화문역에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의 취지를 알렸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과제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담았다.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5년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는 광화문역을 찾아 제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을 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약속에 1842일만에 농성을 마무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은 지지부진하다. 약속 이행 여부는 제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내용이 담길지에 따라 달라진다. 29일 열리는 중생보위 회의 결과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발표를 종합하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보다는 대폭 완화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14일 ‘한국형 뉴딜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은 2022년까지 폐지한다고 밝혔지만, 의료급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계급여에서도 재산과 소득 기준을 두고 있어 완전한 폐지로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가장 필요한 필수 급여다”라며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또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단순히 선정기준의 변화가 아니라 시대에 맞지 않는 가족중심의 복지제도와의 결별”이라며 “자신의 소득과 재산만으로 기초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권리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빈곤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외쳤다.
반짝이 홈리스야학 학생(왼쪽)이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수급자 탈락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실제로 부양의무자기준은 단절된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물어 개인의 빈곤을 부추기고, 존엄마저 해치고 있다. 반짝이 홈리스 야학 학생은 어머니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될 수 없다. 방세를 내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공공근로를 해야 하지만, 공공일자리는 짧고 비정기적이며 급여마저 적다.
“걸레를 손으로 꽉 짜야 하니까 손목도 아파요. 그런데 전기 값도 줘야 하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계속 일을 해야 해요. 돈을 안 벌면 나는 굶어 죽어요. 아무것도 안 돼요. 돈을 벌어야 해요. 일을 안 시켜줄 때도 돈이 필요한데 수급은 안 된다고 해요. 엄마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안 된다고 하는데 사이 안 좋은 가족 때문에 수급 못 타게 하는 거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오래전 가족과 헤어져 살더라도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양의무자가 되어 서로의 발목을 붙잡게 된다. 박승민 동자동 사랑방 간사는 “93년 IMF 시절부터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분은 노숙으로 건강도 잃어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수급이 끊겨서 주민센터에 물어보니 아들이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다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그분은 ‘그동안 아들에게 해준 게 없어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무슨 염치로 자식을 찾아가서 (관계단절증명서를) 요구하느냐’며 분노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가난에 몰리게 되면서 노숙을 하게 되고, 겨우 쪽방을 얻어 살아왔는데 이제는 이곳에서마저 내쫓길 수 있는 기준이 바로 부양의무자기준이다. 정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굶어죽어야 한다”고 암담한 현실을 알렸다.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정부는 특히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고 있다.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의료급여는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지만, 우리나라 총인구의 3%만이 의료급여 수급자다. 정부는 재정운영의 측면에서 의료급여 수급자 수를 관리하는 것이다”라며 “지난 21일 열린 토론회에서도 복지부 관계자는 다른 의료보장제도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건강보험 차상위계층 본인부담 경감, 재난적 의료보장제도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보장제도는 매우 제한적이고, 적은 지원 내용을 담고 있으며 부양의무자기준도 적용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간사는 “정부는 의료보장의 건강보험 일원화를 말하지만, 1만 원 이하의 건강보험 생계형 체납자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라며 “이들은 보험료를 재체납하고, 장기체납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보험료 납부를 독촉해 아파도 단 한 번도 병원을 못 가는 사람들이 21%에 달하고 있다”고 의료복지 사각지대의 상황을 전했다.
이러한 사각지대 발생을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비수급 빈곤층은 93만 명에 달하고, 건강보험 보장률도 OECD 국가의 평균인 8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는 재정을 이유로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는 가난한 사람들과 가족에게 빈곤의 책임을 떠넘겨온 차별과 폭력적인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열릴 중생보위에서 생계급여·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계획을 담아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오는 29일 중생보위 회의 결과를 지켜보며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계획이 나올 때까지 농성장을 지키겠다고 결의했다.
광화문역 기자회견에 모인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 사진 허현덕 한 참가자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미뤄선 영원히 못 한다’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