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협 창립 23주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차별 말고 예산 보장하라”
한자협, 국회 앞에서 23주년 기념식 열어
자립왕 시상식·결의대회·자립생활 행진 진행
23년간 이어온 자립생활 투쟁…여전히 남은 과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강화, 예산으로 보장하라”
중증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의 당당한 자립적인 인간이기를 원한다.
오늘 우리는 이 정부와 사회가 중증장애인들에게 가해온 지난 세월의 배제와 차별을 말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인간적인 모순들을 당당하게 투쟁으로 타도할 것임을 선언한다. 그리함으로 중증장애인들도 이 사회와 따로 격리되지 않고 시민의 권리를 가진 당당한 한 인격의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해 나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시설로 돌아가거나 집구석에 박혀서 ‘내 탓이요’ 가슴을 치며 평생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비록 중증장애인이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은 당연한 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천명한다. 또한 국가는 중증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가 단지 헌법을 치장하는 글귀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가치라는 것을 투쟁으로 가르쳐줄 것이다.
2003년 10월 20일
한국장애인IL단체협의회 출범선언문 중
23년 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장애인의 권리와 자립생활을 향한 선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한자협 소속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장애인들은 동료들과 함께 권리를 쟁취하고 지역사회를 바꾸는 투쟁을 이어왔다.
거리에서 싸우고 한강대교를 기어가며 활동지원제도를 만들었고, 수많은 농성을 이어가며 탈시설과 자립생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거주시설은 남아 있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국가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자협이 창립 23주년을 맞아 다시 국회 앞에 모였다. 한자협은 20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에서 기념식을 열고 제14대 자립왕 시상식과 ‘장애인 차별 예산 철폐! 장애인자립생활 권리 예산 보장!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강화를 촉구하는 자립생활 행진을 벌였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300여 명의 장애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장애인 자립생활 투쟁의 거점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차별 철폐와 예산 증액,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했다.


거리에서 싸우며 열어온 자립생활,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결의대회 발언에 나선 오영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자신의 자립생활 경험을 이야기했다. 오 회장은 “1994년에는 집에만 있었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집에만 있으면 이대로 못 살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는 형과 함께 4년 동안 자취했다. 집에는 알리지 않고 가출하듯 도망쳐 나와 자취생활을 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03년 한자협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 부모의 반대도 심했고, 시설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게 정답이고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며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건 모두 거짓이고 위선이었다. 우리를 감옥에 가두는 미봉책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오 회장은 “한자협은 23년 전 한국의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과 중증장애인의 삶, 탈시설을 위해 출범해 지금까지 올곧게 투쟁해 왔다. 지금도 이 자리에 있다. 너무나 자랑스럽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어 “23년 동안 정부가 여섯 번 바뀌었지만, 한자협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을 제대로 실행한 정부는 하나도 없었다”며 “이재명 정부에서 우리의 권리예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지역에서 온 대표자들도 발언에 나섰다. 정기열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차별 없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강화를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여전히 차별받고 있지 않은가”라며 “23년 동안 현장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가장 앞장서 투쟁해 온 센터가, 생긴 지 1년도 되지 않은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보다도 못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가 언급한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은 윤석열 정부가 강행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신설된 장애인복지시설 유형이다. 개정법 제58조 제1항 제2의2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는 같은 법 제54조에 근거해 권익옹호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확립해 온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는 다른 시설이다.
정부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는 5명,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에는 7명을 기준으로 인건비 등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은 이러한 지원 격차를 ‘차별예산’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관련 기사: 한자협 22주년, 기재부 농성 돌입 “IL센터 차별 없는 지원 쟁취할 것”)
유승권 전주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부소장은 “23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너무나 많다”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우리가 똘똘 뭉쳐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의 시청과 도청, 시의회와 도의회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별 없는 예산 지원을”…국회 앞 행진·여야 면담 요청
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국회 앞 도로를 행진했다. 대형 현수막 3개를 펼쳐 국회의사당 앞 도로를 약 20분 동안 점거하며,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차별 없는 예산 지원을 국회에 촉구했다. 이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찾아 면담요청서와 예산요구안을 전달했다. 앞서 열린 제14대 자립왕 시상식에서는 12명의 장애인이 수상했다.
수상자는 △강원 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지영 씨 △경기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성원 씨 △경기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기현 씨 △광주 비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주리 씨 △대구 다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경호 씨 △부산 영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광현 씨 △서울 종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선동 씨 △서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문석영 씨 △인천 인천열린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성희 씨 △전남 광양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연주 씨 △전북 세움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유대희 씨 △충북 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광일 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