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탈시설로드맵’은 ‘시설서비스 재편 계획’
‘시설’을 ‘시설’이라 부르지 못하는 시대 올 것
시설 이름만 바꿔치기한 탈시설로드맵, 반성 없는 국가의 결과물

결국 문재인 정부가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생활 권리를 10년 전으로 되돌렸다. 지난 2일 공개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로드맵)을 보고 있노라면 2009년이 떠오른다. 국감에서 장애인시설의 인권침해 현실이 고발되자 전국 차원의 전수조사가 실시된 때였다. 대략 이즈음부터 수용된 장애인의 10명 중 7명이 국가에서 지원한다면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대구시는 2009년 실태조사 이후 생뚱맞게도 “전국 최고의 장애인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었다.

문재인 정부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다만, ‘최고의 시설’을 유행에 맞게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였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탈시설’이다. 문제의 핵심은 ‘탈시설’을 ‘탈시설’이라 부르지 못하는데 있지 않다. 탈시설이 아니니 탈시설이 아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제 ‘시설’을 ‘시설’이라 부르지 않기로 하자고 로드맵 전체를 통해 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지난 2일,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 탈시설에 대해 정부는 “장애인이 자신의 주거를 선택할 권리에 따라 집과 같은 환경에서 지역사회와 더불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시설장애인의 거주지 이전을 지원하고, 지역사회 자립 촉진을 위해 시설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지원 정책”이라고 정의했다.

- 시설 강화에 초점 두고, 개인별 지원체계는 기존 제도 나열뿐

정부 로드맵은 향후 20년간의(2022~2041년) ‘시설 거주 장애인의 거주지’와 ‘운영시설의 전환’ 방향을 담고 있다.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장애인은 ‘주거결정권’의 차원에서 대체적인 주거지와 주거유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차원에서 지역 거주를 우선하되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군을 따로 구분하여 기존의 시설서비스를 유지한다. 다만 명칭을 거주시설이 아닌 주거서비스로 변경한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2041년 시설 거주 장애인의 12%는 기존의 시설서비스를 전문주거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유지하며, 60%가량은 공동형 주거지로 이전하고, 28%는 개별형 주거지를 제공받는다. 이행기 동안에는 신규시설 설치가 금지되고, 기존 시설의 거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기능보강 재원을 추가 투입한다.

‘공동형 주거’와 ‘개별형 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전자는 기존의 공동생활가정의 변형된 형태로, 후자는 개인별 주택 또는 공동생활가정과 중첩되는 어느 지점의 형태로 짐작된다. 이들은 시설이라는 물리적 거주지를 벗어나기에 별도의 ‘주거유지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주거유지서비스의 철학과 원칙, 제공인원과 방식, 지원인력의 자질과 배치기준 등은 제시되지 않았으며, 그저 기존 시설이 희망할 경우 주거유지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자동 변경되도록 하고 있어 그것이 시설과 명칭 이외에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반면, 추가적인 시설 입소 예방과 지역사회 생활 보장을 위한 개인별 지원체계 강화는 사실상 로드맵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대한 계획이 명시된 것을 제외하면 후견, 소득, 일자리, 건강, 활동지원, 주간활동 등 대다수 내용이 기존 내용의 나열에 그쳤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 경제적 지원을 위한 자립정착금은 여전히 지자체가 알아서 지급하되 운영형태가 서로 다르면 곤란하니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부분, 퇴소 초기에 집중 지원이 필요할 테니 지금 실시 중인 활동지원서비스의 시설 퇴소 장애인 특별 추가급여(6개월간 월 20시간 지원)를 잘 활용하시라는 부분, 장애인 가족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여 시설 입소를 예방할 것이라며 기존의 주간활동서비스의 현황을 설명하는 부분은 차라리 절망스럽다. 정부는 지금의 장애인과 그 가족이 시설 입소를 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오히려 지역사회의 지원대책으로 반복한 것이다.

단적인 예로 문재인 정부는 필요한 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보장을 공약했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종합조사 체계가 도입되고,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금까지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24시간 지원을 받는 경우는 없다. 정부가 애초 최대 16시간만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지금의 종합조사체계에서는 확보 불가능한 시간이기에 대다수의 발달장애인과 중증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개인별 서비스 기본 양을 보장받지 못한다. 탈시설에 기초적인 제도인 활동지원 조차 이러니 의사결정 지원, 건강관리, 고용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로드맵은 바로 이런 개인별 지원의 확실한 보장 방안을 내어놓지 않았다. 정부는 대신 시설 입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문시설을 권장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 정부의 반복된 탈시설 왜곡의 역사

탈시설 요구가 오히려 시설화 강화로 왜곡되어 온 역사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2년 미신고시설의 인권침해와 비리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불법 시설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화정책을 택하며 오히려 시설과 인력이 자격을 갖추도록 수백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그러나 지금도 미신고시설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2006년 장애인 활동보조 제도화 및 자립생활 운동이 거세어지자 2009년 정부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더 재원을 투입하여 체험홈을 설치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시설에 자립지원의 역할을 하라고 부여한 이 조치는 어떤 성과도 확인하지 못한 채 정부가 도중에 사업을 중단하다시피 끝났다.

2011년에는 소위 ‘도가니’ 사태를 계기로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이때에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라는 거센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시설 정원을 이제 30명 이상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작 이미 30명 이상이 되는 대규모 시설은 적용에서 제외한 채 말이다. 결국 소규모화는 실패했고, 공동생활가정과 같은 소규모시설만 대폭 늘어났다. 이윽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여러 조사에서 공동생활가정이 중증장애인의 주거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 시설과 같은 인권침해의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문재인 정부는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시설 분산 및 소규모화를 사회 통합의 전략으로 꺼내 들었다. 이번 로드맵은 그 연장이다.

정부는 “거주시설을 지역사회 자립을 촉진시키는 기관으로 바꾸겠다”면서 거주시설을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원하는 경우 ‘주거유지서비스 지원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탈시설로드맵을 알리는 정부 보도자료 캡처.정부는 “거주시설을 지역사회 자립을 촉진시키는 기관으로 바꾸겠다”면서 거주시설을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원하는 경우 ‘주거유지서비스 지원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탈시설로드맵을 알리는 정부 보도자료 캡처.

예상하건대 정부 로드맵대로라면 지금의 거주시설은 ‘전문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이나 ‘주거유지서비스 제공기관’ 혹은 그 모두를 병행하는 모습의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변모할 것이다. 단순하게는 최소 70% 이상의 시설 거주 장애인이 전문주거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시설생활을 유지하거나 공동형 주거지로 이전되어 규모를 줄인 집단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개별형 주거를 가진 장애인에게 제공될 주거유지서비스 역시 그 직접적인 이용자군(시설 거주인 및 입소 대기자)을 보유하고 있는 기존 시설이 병행하는 형태가 압도적일 것이다.

장애등급제의 형식적 폐지 전례와 같이 ‘시설’이라는 용어는 사라질 것이나 시설 형태의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은 강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시설이라는 기존의 전달체계와 전달방식을 폐쇄‧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하는 전략을 택한 정부는 장애인의 권리가 아닌 시설 운영의 이해득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로드맵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탈시설 정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시설이 스스로 수용 가능하여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정책의 속도와 방향, 개념이 기이하게 변경되어 나갈 것이다. 때때로 그것은 정부의 예산 절감 의도와 맞물려 ‘현실적 대안’이라거나 ‘전문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방향은 사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를 위시한 국내의 거주시설이 지속해서 요구해 온 사항의 반영이다. 수용시설, 생활시설, 거주시설에서 이제는 패러다임에 맞게 ‘(거주 또는 주거)서비스’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거나, 거주시설을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설정하라는 것, ‘도가니 위기’에서 이루어진 시설 소규모화 추진계획은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서 제대로 되지 못했으니 이제는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소규모화와 시설 전환을 추진하라는 것은 매우 오래된 주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의 권한을 강화하는 대신 기존 전달체계의 이해를 증진하는 것을 선택한 것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일들을 가까운 시일 내 마주할지 모른다. 정부 로드맵에 기준 한다면 시설은 가능한 한 가장 많은, 현재의 시설 정원에 꼭 들어맞는 인원이 입소한 가운데 소규모화 및 환경 개선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 외부 기관이나 지역사회로 나가는 당사자의 탈시설을 최대한 유보한 가운데 시설 규모를 어느 정도 갖추어 전환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설과 대비되는 것으로 ‘주거유지서비스’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시하였지만, 거주시설 이외의 대안적인 지역사회 주거지원 인프라를 육성하는 것도, 공공의 직접 운영을 자처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 제공기관의 대다수는 기존의 거주시설이 될 것이다. 대다수의 지자체는 이제 정부 로드맵과 마찬가지로 기존 거주시설의 재편, 기존 시설 공간의 개선과 공동형 주거의 확대를 담은 내용을 ‘탈시설 계획’으로 수립해 나갈 것이다. 심지어는 이 로드맵에는 20년 이후 시설이 어떤 형태로도 변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조치사항이 없다. 정부는 시설에 가능한 한 열심히 예산을 투입하고 자발적인 변화의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아래 시설협회) 홈페이지 메인화면. “변화의 대상이 아닌 변화를 함께 주도해 가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시설협회 측은 탈시설과 관련하여 거듭 거주시설을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설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아래 시설협회) 홈페이지 메인화면. “변화의 대상이 아닌 변화를 함께 주도해 가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시설협회 측은 탈시설과 관련하여 거듭 거주시설을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설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 탈시설로드맵 아닌 ‘시설서비스 재편 계획’

정부 역시 이번 로드맵이 불안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정부는 해외 사례를 들어 선진국에서도 탈시설이 30년~40년 동안 장기적으로 추진된 것이며, 여전히 대다수 국가에서 시설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선진국이 된 지금 한국의 수준에서 30년~40년 전의 시점에서 출발하는 게 맞는 접근인가는 차치하더라도, 과거 수십 년 동안의 시설 중심의 소규모화 개선 전략의 시행착오 속에서 2006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 2017년 협약 19조(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에 관한 일반논평이 나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즉, 장애인 개인의 권리가 아닌 시설 개편 전략으로 탈시설을 추진해서는 시설 또는 시설화된 형태의 새로운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으니 그러지 말라는 탈시설 선도국가의 후발국가에 대한 엄중한 교훈을 외면한 채 30년 전 시점으로 돌아가 시작하자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로드맵에서 최신 자료로 들고 있는 유럽연합의 통계, 그러니까 최근까지도 탈시설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조차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30인 이상의 시설이 모두 존재하더라는 내용은 ‘그러니까 천천히 해라’, ‘다른 나라들도 소규모화하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보고서는 지속해서 ‘이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인데 자꾸 이래서 큰일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와 겪는 변화를 30년 이상 추적 조사해 오고 있는 제임스 콘로이 박사가 2015년 한국의 한 포럼에서 말한 당부는 명료했다. “시설 개선을 위한 노력은 결실을 이룰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은 엄밀히 말해 ‘시설 서비스 재편 계획’ 또는 ‘재시설화(re-institutionalization) 로드맵’이라고 불러야 한다. 전제, 초점, 방향 모두 잘못되었다. 가족부양 책임의 전제 구조가 국가책임으로 전환되지 않았으며, 특수한 형태의 서비스와 그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따로 설계하여 지원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을 분리하는 시설과 시설화된 형태의 차별 정책 폐지에 애초 초점을 두지 않았다. 그 방향 역시 장애인 당사자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공급자의 이해를 보호하는 것이 중심이기에 아무리 예산이 늘어나더라도 당사자의 권한이 강화되기보다 공급자의 영향력이 증대함으로써 그에 예속되는 삶을 벗어나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돈은 돈대로 들고, 정책은 실패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가족책임+특수형태+공급자 중심’이라는 고질적인 한국 장애인복지의 그 무엇으로부터도 ‘탈(脫)’하지 않았다.

-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벗어난 정부 로드맵

정부 로드맵은 시설 폐쇄가 아닌 시설 유지가 중심이다. 장애인복지법 개정 등 공급자의 이익 보호를 위한 사항은 구체적이지만,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 장애인 당사자의 실질적인 서비스 결정 권한의 강화 내용은 선언적이다. 중증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지금 시설에서 제공받는 서비스 수준 이상을 어떻게 보장받으며, 동시에 공급자의 이해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권한을 가지고 결정과 선택을 하게끔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로드맵은 말하지 않고 있다. 그를 위해 지금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생활에 핵심을 이루는 제도들을 어떻게 개편‧강화할 것인지에 대해 어떤 대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벗어난(脫) 것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단 하나뿐이다. 협약에서 말하는 탈시설의 방향은 ‘시설 폐쇄’와 ‘시설화 요인 제거’이다. ‘시설 폐쇄’라고 하여 단순히 기존 시설을 탈시설 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협약은 시설 운영에 따른 이해관계가 아니라, ‘시설’이라는 전달체계에 투여되어 온 국가 차원의 재원과 인력, 그것이 만들어 낸 반인권적인 서비스 문화를 어떻게 장애인 당사자의 권한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의 서비스가 새롭게 확대‧창출되는 형태로 즉, 자립생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다룬다. 그 때문에 탈시설 흐름에 조응하도록 정부가 발 벗고 나서 법도 개정하고 시설의 명칭도 바꾸고 소규모화 및 환경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예산도 지원하겠다는 정부 로드맵은 그 자체로 협약의 위반이다.

정부는 로드맵의 원칙 중 하나로 장애인 당사자의 주거결정권과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라고 정부는 로드맵의 주요원칙 중 하나가 장애인 당사자의 ‘주거결정권’과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라고 밝혔다. 보도자료 캡처.

- 이상한 ‘주거결정권’, 정부의 권리 쪼개기

로드맵의 모순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 정부의 다소 독특한 권리 개념이다. 주거권도 아닌, 자기결정권도 아닌 ‘주거결정권’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시설 유지 내용을 갖고 탈시설 로드맵을 말해야 하니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협약 19조 본문 중 a조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고,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부 로드맵에서는 본인이 의사를 표현하여 개별형 주거를 취할 수 있는 장애인을 제외한 70%의 장애인 즉, 공동형 주거로 이전되거나 기존의 시설에서 살아가게 되는 장애인이 어떤 선택의 기회와 권한을 가진다는 것인가?

이에 정부는 협약 19조 b조의 내용 즉,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생활과 통합을 지원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부분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로 표현하여 이 70%의 장애인을 다른 시설 형태의 서비스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근거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들은 ‘주거결정권’에 따른 탈시설 대상군(?)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에 따른 탈시설 대상군처럼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주거결정권’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강조할 것이었다면, 의사결정이나 확인이 어려운 이들을 임의로 ‘공동형 주거’나 기존 시설에 ‘재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공간들은 비교적 의사결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들에 한해서만 엄격하게 ‘선택’되도록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제시했어야 했다. 또한, ‘주거결정권’은 일반논평 5호에 의하면 ‘거주지를 선택하고,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함께 거주할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로 절대적이며 즉시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영역에 속하기에, 누구를 우선적으로 할 것이며 연차적으로 몇 명을 할 것인지 계획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

나아가 협약의 b조는 a조와 위계적이거나 양자택일의 관계에 있는 개념이 아니다. b조는 독립된 조항이 아니라 a조에 따른 개인별 지원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분리 및 제한하는, 시설 형태의 지원서비스는 모두 19(b)조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때문에 기존의 시설을 변형시켜서 명칭을 다르게 한다고 하여 보장되는 개념이 아니며, 20년 동안 시설의 변화를 지켜보며 보장하겠다는 것은 더욱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마치 모든 장애인에게 탈시설을 보장하는 듯 비차별 원칙을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분리될 수 없는 협약의 권리 개념을 분리하여 어느 집단은 어떤 권리가 있고 어느 집단은 어떤 권리가 있는 것처럼 차별하여 접근하고 있다.

협약이 시설 폐쇄와 시설화 요인 제거를 통해 목표하는 것은 장애인의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이다. 이는 그저 자신이 살 주거지를 선택하는 것, 지역사회에 형식적으로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띠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시설도 주거지의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자립적 생활은 주거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관한 실질적인 선택과 통제가 가능하도록 모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보장받는 것이며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에 기초한다. 지역사회 포용은 지역사회 내에 특정하게 구획된 서비스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모든 영역에서의 완전한 접근권 보장을 의미한다. 탈시설에 관한 직접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협약의 일반논평 5호는 이렇게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장애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개인의 선택과 통제의 권리를 부정당해 왔다. 많은 장애인이 스스로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지원 제도는 이용할 수 없거나 특정 거주 조건에 묶여 있고, 지역사회 인프라는 보편적으로 설계되지 않는다. 자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의 개발이 아니라 시설에 투자된다. 이는 유기, 가족에의 의존, 시설화, 고립, 분리로 이어졌다.”

탈시설로드맵이 발표되는 지난 2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룸센터 앞 컨테이너 옥상에 올라 정부에 제대로된 탈시설로드맵 정책을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탈시설로드맵이 발표되는 지난 2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룸센터 앞 컨테이너 옥상에 올라 정부에 제대로 된 탈시설로드맵 정책을 촉구했다. 사진 하민지

- 시설 이름만 바꿔치기한 탈시설로드맵, 반성 없는 국가의 결과물

마치 ‘탈시설’에 관한 정의가 천차만별인 것처럼, ‘시설 폐쇄’가 마치 하루아침에 시설의 문을 폐쇄하자는 선동인 것처럼 국내 여러 이해관계자에 의해 왜곡되고 때로는 활용되고 있지만 탈시설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탈시설은 시설 또는 시설 형태로의 수용과 배제가 장애인을 분리하는 차별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모든 장애인이 적절한 지원을 받으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며, 마땅히 그럴 권리가 있으니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살아감이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 자립적인 삶이 되도록 독려하는 제도와 문화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 탈시설을 장애인의 권리로 인식하고 보장하고자 했다면 시설이라는 전달체계의 강화가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삶과 그 가능성에 더 큰 관심을 두었어야 했다.

지금 정부의 로드맵에 대한 모든 비판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정부 스스로가 국가의 반성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반성하지 않으니 시설은 억울하다. 시설이 억울해하니 시설만 지켜봐 온 가족은 불안하다. 국가의 반성이 없다는 것은 국가가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복지를 설계하고 보장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시설 혹은 시설 형태의 서비스도 하나의 사회보장 방식으로 정당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니 빠른 시일 내 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특단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부디 이번 로드맵이 선진국 흉내 내기가 아니라면 정부와 여당은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해 이제까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 온 시설 수용의 역사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향후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 사회가 시설이라는 차별 정책을 폐지하는 것을 정확히 목표로 설정하고 그동안 대대적인 사회 전환을 시작하자는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립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소득, 활동지원, 주간활동, 고용, 교육, 건강, 교통, 차별 등에 관여하는 관련법의 전면적인 제‧개정 검토를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한다. 사라져야 할 것은 명칭이 아니라 시설 수용 제도이다. 재배치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이 아니라 기존 시설의 재원과 인력이다. 탈시설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정해진 길’이다. 문재인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에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기준한 진정한 탈시설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기사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