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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원 시간 부족으로 더는 죽을 수 없다” 장애인들, 국민연금공단 밤샘 점거 돌입
당사자 필요보다 국민연금공단의 일방적 점수 매기기로 결정되는 활동지원 시간
전국 동시다발 집단 이의신청… “점수에 우리를 가두지 말라!”
 
등록일 [ 2019년03월18일 19시52분 ]
 
 

1552911956_94467.jpg근육장애인 이민호 씨는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에 휠체어에서 혼자 내려오다가 넘어져 크게 다쳤다. 당시 사고 사진.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 활동지원 시간 부족, 탈시설 막고 장애인의 생명 위협까지

 

대구에 사는 이민호 씨는 근육장애인이다. 지난해, 그는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에 휠체어에서 내려오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턱부터 바닥에 닿으며 떨어지는 바람에 턱이 찢어졌다. 핸드폰이 멀리 있어 119를 부르지도 못했다. 한 시간 만에 휠체어에 겨우 올라타고 나서야 인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이 시간 동안 계속 피를 흘려 바닥과 티셔츠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이 씨가 받는 활동지원 시간은 한 달에 150시간. 진행성이고, 순간적으로 근육의 힘이 빠져 곧잘 넘어지곤 하는 그의 장애 특성은 활동지원 인정조사표 안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인들의 몫이다. 그리고 이 피해는 생명까지 위협한다. 부족한 시간 때문에 반년간 하루에 한 끼밖에 식사하지 못해 몸무게가 40kg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고, 밤시간 활동지원을 받지 못해 살인적 폭염 속에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도 있었다. 2014년 4월에는 장애등급 기준에 미달해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조차 하지 못한 고 송국현 씨가 불이 난 집에서 대피하지 못해 숨졌고,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하루 최대 9시간의 활동지원만 받을 수 있었던 고 오지석 씨 역시 혼자 있는 사이 빠진 호흡기를 다시 끼우지 못해 그해 6월 사망했다.

 

부족한 활동지원시간으로 인한 피해는 지체장애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에 사는 김경남 씨는 지적장애 2급이다. 탈시설 한지 10년이 되었다. 김 씨가 받는 활동지원 시간은 한 달에 80시간. 하루 두 시간 가량이다. 2014년 처음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했을 때부터 변함이 없었다. 신체 기능 중심으로 짜여진 인정조사표 때문에, 김 씨와 같은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처지가 비슷하다. 시간이 너무 적다보니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것 자체부터 어렵거니와, 가사지원만으로도 시간을 다 쓰게 된다. 이때문에 김 씨는 병원이나 주민센터, 은행 등에 활동지원사와 함께 갈 수 없어 현재 다니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김 씨에게는 야학이라는 또다른 지역사회 자원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탈시설 발달장애인들에게 하루 두 시간은 지역사회 자립을 가로막고 결국 시설에 남아있거나 시설로 돌아가야하는 요인이 된다.

 

이렇게 적은 시간이나마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필수로 거쳐야 하는 것이 '인정조사'이다. 인정조사는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진행하는데, 많은 장애인에게 이 인정조사는 수치와 모욕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무능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도 자존감을 무너뜨리지만, 장애감수성이 부족한 공단 직원의 무시와 차별적 발언에 노출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에는 대구시립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장애인 당사자를 조사하던 공단 직원이 "왜 시설에서 나왔나. 시설에 있으면 다 해주는데, 아무것도 못 하면서 왜 나왔나", "바보는 아니지 않냐" 등의 말을 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관련 기사: 활동 지원 신청한 장애인에게 “시설에서 왜 나왔느냐”는 연금공단 직원)

 

1552911985_77057.jpg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8일, 활동지원서비스 판정 기준 변경과 당사자 참여 보장을 촉구하며 서울, 대구, 부산-경남, 광주-전남, 충북 국민연금공단 지사에서 전국 동시다발 집단 이의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 동시다발 집단 이의신청… “점수에 우리를 가두지 말라!”

 

이렇게 활동지원서비스 판정 과정에서 차별적인 경험을 겪었거나,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를 판정받지 못한 장애인 당사자들을 전국에서 모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18일, 각 지역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집단 이의신청 접수를 했다. 전장연은 활동지원서비스 판정 기준 변경과 당사자 참여 보장을 촉구하며 서울, 대구, 부산-경남, 광주-전남, 충북 국민연금공단 지사에서 동시 직접행동을 진행했다.

 

직접행동 참여자들은 "점수에 우리를 가두지 말라!", "당사자 배제한 서비스 판정 반대한다!", "탈시설 초기정착 집중지원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민연금공단이 진행하는 장애인 활동지원 인정조사 방식과 판정 기준에 대한 오랜 분노를 쏟아냈다.

 

전장연은 "2006년부터 시작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은 활동지원서비스가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필수적 권리라는 선언이었다"라며 "하지만 제도 시행 10년을 훌쩍 넘긴 2019년 현재도 활동지원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장애인 38만명 중 8만명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중앙정부 기준 월평균 지원 시간도 109시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 방향'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도입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도를 파악하여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개인의 욕구, 환경을 포괄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서비스'에는 활동지원서비스도 포함된다. 당시 정부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를 모의 적용한 결과, 일 최대 지원시간이 기존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으로 확대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장연은 이러한 정부의 발표가 기만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19년 장애인활동지원 중앙정부 예산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서비스 수가 인상 및 대상자수 소폭 인상을 제외하면 사실상 예산 동결 수준이며, 예산 산출 근거가 된 장애인 1인당 평균 수급량도 월 109시간으로 수년째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전장연은 "이러한 상황에서 월 평균 지원시간이 증가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는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일방적으로 수급량을 결정하는 서비스 판정체계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전장연은 일방적이고 행정편의적인 '점수 산정'이 아니라, 당사자의 욕구와 필요를 반영하는 판정 체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1552912140_39513.jpg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기자회견에 참여한 장애인 활동가들.
 

이날 서울지역에서는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집단 이의신청 접수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오후 3시에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이원교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2006년부터 진행된 활동지원제도 도입 투쟁에서 우리는 삭발을 하고 한강대교를 맨몸으로 기었다. 활동지원제도는 우리가 투쟁으로 쟁취한 중증장애인의 '권리'이지 '시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장은 "그러나 현재 인정조사 방식을 보면, 마치 국가가 장애인에게 대단한 특혜라도 제공하는 것 같다"라며 "국가가 '주는 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절차 때문에 활동지원 없이 탈시설하기도… ‘복지부 장관 면담’ 촉구하며 공단 점거

 

이날 전국에서 150여명이 활동지원 인정 점수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이 중 상당수가 탈시설 발달장애인이다. 시설에서 수십년간 살아온 이들에게는 가스 불 켜는 것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까지 모두 새로 배워야 하는 과제들이다. 그 때문에 이들이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을 배우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탈시설 직후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이 필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은커녕 활동지원을 받지도 못한 채 자립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 일쑤다.

 

1552912047_80301.jpg장애인 거주시설 인강원에서 탈시설을 지원하는 백지혜 씨
 

장애인 거주시설 인강원에서 거주인 탈시설을 지원하는 백지혜 씨는 시설 퇴소 1개월 전부터만 활동지원 수급 신청이 가능한 제도를 꼬집었다.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지원 신청을 한 후 공단이 조사하고 수급심사위원회를 거쳐 활동지원서비스를 실제로 받기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리는데 시설 퇴소 한 달 전, 시설의 증빙서류까지 있어야만 겨우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이 가능하다 보니 활동지원 없이 퇴소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백 씨는 "2월 26일에 활동지원 신청을 접수한 당사자를 조사하러 온 공단 직원이 '3월 25일 안으로 퇴소하셔야 하고, 활동지원서비스는 4월 1일부터 제공된다'고 말해 그럼 일주일 이상 이 분을 누가 지원하느냐고 물었다. 직원이 '글쎄요', '그게 문제긴 하네요'하는 말만 남기고 돌아가 버려 황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센터, 구청, 국민연금공단에 두루 문의를 해보았지만 서로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하기만 했다"라며 "행정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일이라는 점을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일침했다.

 

1552912074_37526.jpg당사자 배제한 서비스 판정 반대한다 등 장애인 당사자들의 항의 목소리가 적힌 종이가 국민연금공단 서울 종로중구지사 벽면에 가득 붙어있다.
 

이날 전장연 대표단은 국민연금공단 측과 1시간 30분가량 면담을 진행했다. 대표단은 공단 측에 △이의신청자들에 대한 재심사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를 반영하는 조사 체계 마련 △조사원 장애인식 교육 △시설 거주 장애인 수급 신청 조건 폐지 △탈시설 장애인 초기정착 집중지원 보장 등을 요구했다. 공단은 재심사를 4월 중으로 진행하겠다고 답변하고, 조사원 교육 역시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인정조사 체계 개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고,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 시간 확대는 복지부 소관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러한 면담 결과에 전장연은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건물에서 1박 농성을 하고, 이튿날 오전 10시까지 복지부로부터 면담 요청에 대한 답변이 없을 경우, 복지부 장관 면담을 촉구하는 투쟁 진행을 예고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면담 결과를 공유하며 "장애인의 생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에 대해, 생명줄을 쥐고 점수로 잘라내는 국민연금공단은 아직도 복지부 핑계를 대고 있다"라며 "이렇게 된 이상, 등급제 폐지 이후 활동지원 확대에 대한 어떤 계획도, 책임 있는 약속도 하지 않는 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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