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권일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가 작전1동 행정복지센터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겪는 고충에 관해 말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제게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는 민원처리할 수 있는 1층이 전부인 곳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네에 있는 작전1동 행정복지센터는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있습니다. 2층에는 북카페가, 3층에는 여러 배움교실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 적이 없는 제게는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서권일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복지센터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다”라며 보건복지부와 15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진정에 나섰다. 행정복지센터는 기초 행정과 민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행정기관이다.
지난해 장추련은 전국 3,499개 행정복지센터 중 1,793개를 조사했다. 그 결과, 2층 이상 건물 1,690개 가운데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곳은 625곳에 불과했다. 장애 유형별 민원실 편의제공도 충분하지 않았다. 점자 책자를 제공하는 곳은 731곳(42.3%), 수어통역 제공은 374곳(21.6%)에 불과했다.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은 곳은 314곳(17.5%)이었으며, 장애인 화장실을 갖추었으나(1479곳)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절반(689곳, 46.6%)도 채 되지 않았다. 사용할 수 없는 이유로는 화장실이 좁아서(478곳, 58.3%)가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남녀 구분 안됨(353곳, 43%), 청소도구 등 물건이 있어서(248곳, 30.2%)가 잇따랐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승헌 장추련 활동가는 “행정복지센터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를 현재 제공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보건복지부와 행정복지센터를 관리·감독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방치하지 않도록 인권위에 강력한 정책권고를 요청한다”라고 진정 취지를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복지센터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다”라며 보건복지부와 15개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진정에 나섰다. 사진 박승원
다가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투표 접근성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2년 전 기초단체장 선거를 할 때 내가 찾아간 행정복지센터는 투표소를 2층에 설치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올라갈 수 없었다”라면서 “행정복지센터 접근 문제는 장애인 참정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라고 꼬집었다. 2018년 사전투표소 장애인접근성 통계에 따르면 전국 투표소 3,512곳 중 행정복지센터가 63.8%(2,242곳)를 차지했다.
행정복지센터 조사를 함께한 김인의 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시각장애인이다. 김 활동가는 “점차 책자를 제공하는 곳이 별로 없었다. 있더라도 점자가 눌려 읽을 수 없는 곳도 있었다. 누가 언제 방문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라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바꿔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추련 조사에 따르면 점자 상태 ‘좋지 않음’이 18%에 달한다.
박김영희 장추련 공동대표는 “행정복지센터는 줄여서 ‘행복센터’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든 주민에게 행복을 주는 곳인지는 모르겠다”라면서 “여전히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고 장애 유형별로 안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않다. 국가가 법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나서서 바꿔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51명의 장애인은 복지부 장관과 15개 지자체장을 상대로 ‘행정복지센터 장애인 편의 미제공’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곽남희 노들센터 활동가가 ‘장애인등편의법 상 의무이나 접근 NO, 점자안내책자(18.6%), 수어통역(9.5%)'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그 뒤로는 인권위 간판이 보인다. 사진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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