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반대 토론회’ 연 천주교 신부이자 시설원장들
탈시설 장애인 “그게 주님의 뜻? 장애인은 짐승 아닌 사람”
장애계, 인권위에 신부들 상대로 진정서 제출

“천주교에서 세례받은 야고보입니다. 음성 꽃동네에서 살았던 15년, 행복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다시는 꽃동네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는 너무 잘 살고 있습니다. 내가 바로 탈시설운동의 증거입니다. 신부님들, 어떻습니까?”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에서 19년을 살았습니다. 저는 종교가 싫습니다. 기도문 못 외운다고 혼나고 강제로 미사를 듣는 게 싫었습니다. 늘 서 있는 성모상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지금은 탈시설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우리는 원해서 시설에 간 적이 없습니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내 의지대로 살고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

“찬미예수. 김주현 대건안드레아라고 합니다. 저들은 ‘주님의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알량한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장애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장애인거주시설의 문을 열고, 그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살 수 있도록 하십시오. 당신들이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여 탈시설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까지 한 사람의 장애인이자 신도로서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투쟁.” (김주현 서울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

장애인인권운동단체 활동가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현수막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 ‘탈시설로드맵 분석과 대응방안’ 토론회 비판 및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장애인인권운동단체 활동가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현수막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 ‘탈시설로드맵 분석과 대응방안’ 토론회 비판 및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16일 오전 11시, 거대한 명동성당 앞.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였다. 천주교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이들 중에는 자신이 천주교 신도라 밝힌 이도 있었다. 이들은 “장애인을 거주시설에 가두고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게 주님의 뜻인가”라고 천주교 신부들을 향해 따져 물었다.

이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거주시설 원장이자 천주교 신부인 이들의 망언 때문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8월 24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보건복지부가 같은달 2일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반대하는 토론회였다. (▷관련 기사 : 천주교, 탈시설 부정하며 ‘시설 지키기’ 나서나… 장애계 ‘우려’ 표해

토론회에서 이병훈 대구대교구 신부(들꽃마을 원장)는 “탈시설로드맵은 과연 축복인가 저주인가”, “발달장애인이 나가고 싶다고 대답했나”, “(지원주택에서) 혼자 마음껏 가만히 있는 것과 (시설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조금 불편하게 있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자유로운가” 등 장애인 인권을 등한시하고 거주시설의 존립만 걱정하는 망언을 했다. 이기수 수원교구 신부(둘다섯해누리 원장)는 “발달장애인이 (탈시설을 요구하며) 데모하는 건 못 봤다”라며 장애인 당사자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기자회견 후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과 탈시설운동 활동가들이 명동성당 벽에 피켓을 붙이자 한 신부가 나와 “지금 기도하는 사람들 있으니까 조용히 해 달라. 마이크 사용은 하지 말아 달라”라며 불편한 기색을 표하기도 했다. 성당 측에서 부른 경찰은 기자회견 내내 활동가들을 채증했다.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유경촌 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과 이병훈 신부, 이기수 신부를 상대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박경인 활동가가 명동성당 외벽에 피켓을 붙이고 있다. 피켓에는 ‘중증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박경인 활동가가 명동성당 외벽에 피켓을 붙이고 있다. 피켓에는 ‘중증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천주교 운영 시설을 나온 탈시설당사자의 증언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기자회견은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천주교 신부들의 입장에 하나하나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우선 “발달장애인이 (탈시설을 요구하며) 데모하는 건 못 봤다”고 말한 이기수 신부의 말에,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당사자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언했다.

박경인 활동가는 “시설에서 살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신부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밖에 나갈 수 있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내 방 없이 6명이 한 방에 같이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를 지원할 수 없어서 같은 방에 사는 다른 거주인을 지원하기도 했다”며 시설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천주교 토론회를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시설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시설에서 사는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하느님의 뜻이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내 의지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어디서 살고, 누구와 함께 살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종교를 선택할 권리도 있다. 장애인도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추경진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추경진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음성 꽃동네에서 15년간 살았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 또한 시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추경진 활동가는 “꽃동네에서 15년간 죽지 못해 살았다. 바깥에 나가서 바람을 쐴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새벽 5시 30분에 강제로 일어나 밥 먹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가 12시에 밥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오후 5시에 밥 먹고 잤다. 이게 시설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추 활동가는 “장애인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시설은 우리를 짐승처럼 가둬 놓고 밥 세 끼만 먹였다. 천주교, 당신네 뭘 하고 있나. 신부라는 사람들은 시설에서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탈시설 바깥의 삶을 봤나. 신부님은 자신이 선택해서 시설을 운영하지만 장애인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설에서 산다. 시설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장애인에게 ‘시설에서 살래, 지역사회에서 살래’라고 묻자는 게 말이 되나”라고 성토했다.

김수정 대표가 명동성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는 장애인당사자인 피해자들의 인격권 침해행위에 대해 사과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김수정 대표가 명동성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 사회복지위원회는 장애인당사자인 피해자들의 인격권 침해행위에 대해 사과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탈시설 촉구하는 장애부모 “내 자식, 동네에서 살기 원한다” 

천주교 토론회에서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많은 부모가 탈시설정책을 원하지 않는다는 발언도 있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대표는 “지역사회에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24시간 지원체계가 없기 때문에 부모가 마지못해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 시설이다. 저는 제 아들이 지금 사는 동네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다가 죽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탈시설운동이 요구하는 정책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천주교는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기는커녕 그들 위에 군림한다. 제가 배운 신은 인간을 모두 평등하게 대하는 분이다. 그걸 행하는 게 종교인 아닌가. 신부로서 누구보다 먼저 탈시설을 외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 사는 투쟁의 길에 함께하기를 촉구한다. 종교인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명동성당 외벽에 피켓을 붙였다. ‘좋은 시설은 없다! 장애인의 탈시설권리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명동성당 외벽에 피켓을 붙였다. ‘좋은 시설은 없다! 장애인의 탈시설권리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천주교 토론회에서 이병훈 신부는 탈시설당사자가 지원주택에 자립해 사는 모습을 무단으로 도용해 화면에 띄우면서, “이들의 상태는 다음과 같다”고 말하며 탈시설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최선영 프리웰지원주택센터 센터장은 이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이분들이 시설에서 살 때 어땠는지 신부님들은 보신 적이 있는 건가. 콧줄을 착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침상에 양팔이 결박된 채 24시간을 지내야 했다. 또한 시설에서 약물을 과다 투여해 24시간 잠만 자야 했다”며 “지금 이분들은 지원주택에서 너무나 잘 살고 계시다. 이분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지도 않고 모욕한 것에 대해 신부님들은 분명한 책임을 지셔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선영 센터장은 “지역사회의 지원체계 인프라가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부족한 것만 쳐다보면 장애인은 언제 탈시설할 수 있나. 아직 탈시설운동이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지역사회에서 1:1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는 평범한 삶, 이게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원하는 삶이다. 천주교는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