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도 오지 않는 콜(택시). 나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이동은 출발이 아니라 늘 대기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는 “기다리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한다. 기다림이 하루이틀이면 ‘하소연’이지만, 1년 치로 모이니 ‘제도’로 보였다.

나는 2025년 1년 동안 나드리콜(대구의 특별교통수단)을 부른 시간과 실제 탑승한 시간을 모두 기록했다. 한 해 동안 나는 310번 나드리콜을 이용했다.

실제 대기시간을 알기 위해 사전 예약 후 이용한 17번을 제외하고, 293번 동안 콜을 기다린 시간을 계산했다. 나는 작년 한 해 콜을 173시간 10분 18초 기다렸다.

대충 1만 3백 90분이다. 173시간은 7일이 넘는 시간이다. 나는 365일 중 7일을, 말 그대로 잠도 자지 않고 ‘그놈의 콜!’만 기다리며 살았다.

나드리콜에 타고 있는 노지성 씨. 사진 본인 제공.
나드리콜에 타고 있는 노지성 씨. 사진 본인 제공.

여기서부터 질문이 바뀌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당신의 시간은 선택인가요? 강요인가요?”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그런데 그 24시간을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배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비장애인에게 기다림은 선택지 중 하나다.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택시를 잡을지, 기차를 탈지, 그것에 따라 내가 얼마나 기다림을 선택할지 말이다.

날씨나 컨디션, 때로는 일정이나 사정, 심지어는 그저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바꿀 수도 있다. 기다림이 탄력적이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를 쓰는 내게 이동은 사실상 하나의 레일로만 깔려 있다. 그 레일이 막히면, 내 시간도 멈춘다.

1년에 7일을 길 위에서 버린다는 건, 단지 불편함이 아니라 선택권이 없어서 생기는 차별이다.

이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동이 막히면 관계가 막힌다. 약속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약속을 지키려고 할수록 설명만 늘어난다. “콜이 늦게 와서요.” “아직 배치가 안 되었어요.”

두 번, 세 번 늦다 보면 상대도 이제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턴 나도 늦게 갈게.”

그 말이 나를 배려하려는 말이었는지,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지만, 정말 그 사람은 종종 나보다 늦게 왔다.

어쨌든 우리는 신뢰를 맞춘 게 아니라, 지연을 일상화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겨우 유지했다. 학교도, 직장도, 병원도, 가족과의 만남도...

사람과의 관계든 장소와의 관계든 모든 게 그 전화 한 통에 걸려있다.

나는 늘 두 가지 인생만 살아왔다. 너무 일찍 도착하거나, 너무 늦게 도착하거나. 이유는 간단하다.

콜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너무 안 오니까 씻기만 하고 콜을 불렀더니 귀신같이 10분 안에 도착한다고 전화가 온다.

일찍 배차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옷을 다 입고 불렀더니 이번엔 1시간을 넘게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몸이 먼저 학습한다.

어느 순간 나는 70~80% 준비되면 콜을 부른다. 그래도 대부분 둘 중 하나로 떨어진다. 너무 일찍 와서 허둥대거나,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지거나. 도대체 중간이 없다.

나드리콜을 앱으로 신청한 접수내역. 이런 일도 있었다. 2025년 10월 24일 오후 5시 31분에 접수를 하였지만 10시 50분까지 5시간 20분이 넘도록 배차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동지원센터에 전화를 하여 문의하였더니 시스템 오류라며 이전의 접수를 취소하고 10시 54분으로 다시 접수했다. 통계상 나는 10시 54분에 접수를 하고 11시 6분에 승차를 한 12분만 대기한 고객이 되었다. 사진 노지성.
나드리콜을 앱으로 신청한 접수내역. 이런 일도 있었다. 2025년 10월 24일 오후 5시 31분에 접수를 하였지만 10시 50분까지 5시간 20분이 넘도록 배차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동지원센터에 전화를 하여 문의하였더니 시스템 오류라며 이전의 접수를 취소하고 10시 54분으로 다시 접수했다. 통계상 나는 10시 54분에 접수를 하고 11시 6분에 승차를 한 12분만 대기한 고객이 되었다. 사진 노지성.

나를 처음 만나는 비장애인에게 나는 ‘게으른 사람’이 되거나 ‘변명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지 않으려면 나는 매번 설명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일찍 움직이는지, 왜 이렇게 늦을 수밖에 없는지, 왜 이동에서만큼은 내 의지가 잘 작동하지 않는지. 그래서 나는 ‘빠른 쪽’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남들보다 몇 배 일찍 준비하는 삶. 그런데 그것도 오해를 낳는다. “왜 이렇게 일찍 와?” “일찍 오라는 뜻이야?” 나는 또 설명해야 한다.

시스템이 만든 곤란인데, 곤란을 해명하는 책임은 늘 내 몫이다.

가까운 사람조차 어렵다. 부모님, 친척들과 함께 움직일 때도, 밖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너는 너대로 와라, 우리는 먼저 갈게”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이 야속해서 쓰는 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신뢰가 쌓여야 하는 관계에서, 상대에게 ‘길 위에서 한 시간을 함께 버려달라’고 부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장애인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 지치고, 어떤 장애인은 결국 장애인끼리만 만나는 쪽으로 삶을 좁힌다. 내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고 꼭 말하고 싶다.

“왜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시위하냐”고 묻는 분들께 나는 되묻고 싶다.

여러분이 장애인 시위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약속 시간이나 출근 시간을 못 지키게 하기 때문이라면, 이런 나의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동하려면 법이 필요하다, 이동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이제는 그것을 또 이유로 “국회에 가서 말하라”고 한다.

그래서 좀 더 줄이고 단순하게 “이동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교육받고, 일하고,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그걸 왜 우리한테 말하냐”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와 함께 조금만 더 늦게 기다려줄 수는 없을까요?”,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아야, 함께 경험하고 이야기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글로 쓰니까 그나마 정리하여 쓰는 것이다. 어쩌면 비장애인 입장에선 내 말이 똑같은 말, 또는 술주정뱅이의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또 그 얘기냐”고. 하지만 그 ‘또’가 바로 ‘세계’요, ‘구조’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반복해서 겪은 나의 ‘국가’다.

말할 기회가 부족했고, 함께한 경험이 부족했으니 나도, 당신도 말은 서툴 수 있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장애인의 세계와 비장애인의 세계가 함께 넓어지는 지점까지 가려면, 누군가는 이 ‘강요된 기다림’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1년 중 7일을 기다렸다. 내 시간은 선택이 아니었다. 옆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시간은 선택인가요?

 

기사 링크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9524

필자 소개 

노지성. 권익옹호 활동가 모임 ‘삐딱한 장애인’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