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장애인권리보장법 국회 본회의 통과
처음으로 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탈시설권리
장애계, 통과 직후 법 제정 환영 기자회견 열어
“장애인권리 위해 더 가열차게 투쟁 이어갈 것”
23일 오후 5시 5분, 「장애인권리보장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10년 만이다. 이날 법안은 재석 의원 180명 중 찬성 177명, 반대 0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장애인의 탈시설권리가 처음으로 법에 명시됐다. 표결 직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아래 장총) 등 장애인들은 국회의사당 본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 통과를 기념했다.
‘탈시설화’ 규정… “자립적인 삶과 동등한 기회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김예지·최보윤 국민의힘 의원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통합·조정해 마련됐다. 장애인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바탕으로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고, 장애 특성에 따른 지원을 통해 자립적인 삶과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책임을 명확히 한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권리 증진을 도모한다.
특히 제19조에는 ‘자립생활 권리 보장을 위한 탈시설화 등’이 명시됐다.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이를 위해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탈시설화’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법은 5년 단위의 장애인정책종합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시행을 의무화하고,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의 명칭을 장애인정책위원회로 바꾸는 등 정책 추진체계를 정비했다. 이와 함께 3년 주기의 장애인 권리보장 실태조사, 관련 통계의 수집·관리, 장애영향평가 근거 마련 등을 통해 정책 기반을 강화했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요구해 온, 국무총리 산하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의 ‘국가장애인위원회’로 승격·상설화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장애인 권리침해를 조사하고 관련 소송을 수행하는 장애인권리옹호센터 설치 조항도 제외된 채 법안이 통과됐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제정…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이날 기자회견 발언에 나선 김기룡 전장연 정책위원장은 2017년 1월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처음 발의된 초기부터 참여해, 현재까지 법 제정 과정에 함께해 왔다. 그는 “20대, 21대 국회를 거치며 수차례 법안을 발의했지만 번번이 폐기됐다. 약속은 대선 때마다 반복됐고, 집권 이후에는 어김없이 후퇴했다”며 “그렇게 폐기된 법안 하나하나에는 기다리다 먼저 떠난 동지들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등급심사 앞에서 스스로 생을 놓은 분들, 시설에 평생 갇혀 지내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난 분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에서, 활동지원이 끊긴 단칸방에서 쓰러져 간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있다”며 “오늘의 이 법은 그분들의 눈물과 유언 위에 세워진 법”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우리가 요구했던 내용이 모두 반영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이 법은 우리의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근거이자 유용한 도구, 그리고 투쟁의 무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권리 보장을 쟁취할 때까지 더욱 치열하게 싸우고, 이 법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 역시 이어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범 장총 사무총장은 “십수 년 전부터 전장연과 함께 이 법을 발의하고 논의를 이어오는 동안 정권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며 “오늘 마침내 한국 장애인 인권사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 법은 장애인을 시혜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재정의하며, 우리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법”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법 제정 이후에는)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살아갈 수 있도록 탈시설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실천이 없다면 법은 종이 위의 약속에 불과하다. 정부와 국회가 입법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탈시설 당사자인 이수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탈시설이라는 단어 때문에 많은 수모를 겪었지만, 이제 법으로 제정되니 뿌듯하고 감격스럽다”며 “시설에서 폭력과 학대를 당하면서 제대로 권리를 찾지 못하고 탈시설하지 못한 장애인들을 떠올리면 더욱 울컥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함께 행동하고 투쟁해 나가자”며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날까지 함께 싸워 나가자”고 외쳤다.
기자회견에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발의한 의원들이 모두 참석해 법 제정을 축하했다. 다만 최보윤 의원은 “탈시설”이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현수막을 내려놓도록 한 뒤 발언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통과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