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계류 중인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
“학대 당해도 증명 못 해”…의사표현 어려운 취약 계층 현실
“새 법리 아니다”…기존 판례로도 예외 인정 가능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제3자 녹음 예외 인정을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 촉구’라고 적혀 있다. 사진 장호경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제3자 녹음 예외 인정을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수막에는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 촉구’라고 적혀 있다. 사진 장호경

6월 22일은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장애인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예방·방지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해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정작 의사표현이 어려운 장애인들은 학대피해를 입고도 이를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10개 단체로 구성된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을 통한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보장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기방어와 의사표현이 어려운 학대피해 장애인들이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제3자의 녹음 증거를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3자 녹음’ 인정할까, 대법원 계류 중인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

대책위가 이날 기자회견을 연 배경에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른바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자폐성 장애아동의 부모가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실 내 대화를 녹음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1심은 피해 아동이 스스로 학대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특수교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해당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장호경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장호경

이날 기자회견에는 해당 사건의 피해 아동 어머니가 참석해 직접 발언에 나섰다.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사건이 발생했던 4년 전과 비교해 아이가 말도 많이 늘고, 짧게나마 자기 감정도 곧잘 표현한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가 4년 전 그때에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며 “‘엄마, 아침에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진짜 밉상이네’라고 했어요. 밉상이 무슨 뜻이에요?’, ‘나도 너 싫어. 싫어 죽겠어. 엄마,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어요’라고 전해줄 수 있었더라면, 그 이전에 ‘엄마, 아빠 학교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을 겪으며 저희 아이처럼 모진 일을 당해도 스스로 말로 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보호자가 구체적이고 분명한 학대 정황을 발견했을 때 남긴 녹음만큼은 증거로 인정돼야 한다. 말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의 곁에서 그를 대신해 진실을 밝히려 한 행동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며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우리도 이제는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표현 어려운 취약 계층, 학대 입증할 수단 없어

대책위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과 아동, 치매 노인 등은 학대피해를 입어도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발달장애인과 중증장애인, 영유아, 치매 노인들은 스스로 권리를 찾고 자기방어를 하기 어렵다”며 “차별과 학대를 당해도 증거를 찾지 못하면 결국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는 다시 그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책위는 자기방어가 어려운 사회적 취약 계층의 경우 학대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으로서 제3자 녹음금지 예외 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획일적으로 통신비밀보호법 규정을 적용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에 대한 학대를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3자가 녹음할 경우 예외적으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부에 요청드린다며 “학대를 증명할 수 없게 만드는 법 해석이 아니라 학대로부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학대피해 방어권 보장!’, ‘녹음금지 예외인정!’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장호경
참가자들이 ‘학대피해 방어권 보장!’, ‘녹음금지 예외인정!’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장호경

제3자 녹음금지 예외 인정, “이미 대법원 판례와 법리 안에서 가능”

김재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제3자 녹음금지 예외 인정이 새로운 법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대법원이 인정해 온 법리의 연장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은 그동안 개인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도 증거의 내용과 범죄의 중대성, 증거가 수집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해 온 사례가 있었다”며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공익을 고려해 예외를 인정한 판례들도 이미 존재한다”고 말했다.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 주요 국가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 교수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제가 본 어느 나라도 비밀 녹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이나 치매 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보호자가 녹음한 증거를 무조건 못 쓰게 하는 입법과 판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주장은 무리한 것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내려진 1심 판결, 그 판결의 회복을 요청하는 취지”라며 “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바른 판단을 내려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법원에 장애인·아동·노인 인권단체 및 전문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책위는 향후 탄원서 제출과 국회 입법 토론회 등을 이어가며 제3자 녹음금지 예외 인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단들이 대법원에 제출할 제3자 녹음 예외 인정 촉구 의견서를 들고 대법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장호경
기자회견을 마친 대표단들이 대법원에 제출할 제3자 녹음 예외 인정 촉구 의견서를 들고 대법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장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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