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따라 개인 진정 제기
12년 동안 소송 이어왔지만 권리 구제 못 받아 신청
장애단체들, 개인 진정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전환점 되길…
대법원조차 장애인의 시외고속버스 탈 권리는 가족소재지와 직장소재지가 있는 노선에만 한정한다고 판결한 가운데, 장애인들이 유엔(UN)에 시외고속버스의 휠체어 접근 의무를 강제하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개인 진정을 제기했다.
5일 공익인권법단체 두루와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등은 서울 종로구의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개인 진정을 신청한다고 밝혔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에는 국제인권구제절차로 ‘개인 진정’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차별구제소송 등 국내에서 가능한 구제절차를 모두 진행했음에도 장애인 당사자가 협약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시 신청 가능하다.
12년 소송했지만 결국 유엔으로
개인 진정은 12년 동안 장애인차별구제소송을 벌여 온 끝에 지난 2025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ㄱ 씨가 신청한다.
ㄱ 씨는 지난 2014년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을 근거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시외고속버스에 타지 못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대한민국 정부와 시외고속버스회사들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에 참여했다.
이후 12년 동안 소송이 진행됐지만, 대법원은 정부가 시외고속버스에 휠체어 접근을 의무화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시외고속버스 회사 역시 원고의 가족소재지와 직장소재지가 있는 7개 노선에만 휠체어 접근 장비를 설치하면 된다고 결정했다.
이에 국내의 모든 구제절차를 거쳤음에도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판단한 ㄱ 씨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개인 진정을 신청하기로 했다.
협약에 대한민국 정부 의무 명시돼 있는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르면 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은 협약에서 인정된 권리 이행을 위해 모든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조치를 채택해야 한다.
협약 제9조 접근권 조항에서는 “당사국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교통에 접근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 조치는 “접근성에 대한 장애와 장벽을 식별하고 철폐하는 것을 포함하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2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협약 심의에서 “시외버스, 고속버스, 광역버스 중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버스의 수를 늘릴 것”을 권고받은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외고속버스에 휠체어 접근을 의무화하지 않아 왔다. 더 정확히는 의무로 규정은 해두면서도, 실제 이행은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외고속버스 회사들에 선택권을 줬다.
교통약자법 시행령에는 시외버스에도 휠체어 승강설비를 장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의무를 규정하는 하위법령인 시행규칙에서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교통약자가 승차할 수 있는 승강설비를 갖출 수 있다”며 강제 조항이 아니라 임의조항으로 정해뒀다.
협약에 대한민국 정부 의무 명시돼 있는데…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장애인의 시외고속버스 이동권을 외면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조속하게 심의를 진행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한상원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이번 진정은 진정인들이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시외고속)버스 노선 몇 개를 더 늘려달라는 취지로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 진정을 통해 확인받고자 하는 것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시외고속버스 이용에서 구조적으로 배재해 온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 자체가 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되는 차별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혜란 한국장애포럼 활동가 역시 “대한민국은 협약을 비준하고 18년 동안 협약이 보장하는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국제사회에 한 약속은 단순히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과 제도로 이행되어야 한다. 이번 개인 진정이 협약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개인 진정이 접수되면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고 심의한 후, 그에 따른 권고 사항을 정부에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