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인권침해로 시설폐쇄 처분받은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
퇴소자 중 83%인 20명 이미 다른 시설로 전원
제주시, 남은 13명에게도 ‘시설 전원’ 중심으로 안내
공대위 “지자체, 부모 불안 고려해 지역사회 자립 방안 제시해야”

지난 28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열린 ‘제주 사랑의집 13명 자립지원 촉구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들이 주먹 쥔 손을 높이 들고 있다. 사진 
지난 28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열린 ‘제주 사랑의집 13명 자립지원 촉구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들이 주먹 쥔 손을 높이 들고 있다. 사진 제주 사랑의집 인권참사 피해생존자 13명 전원 자립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반복된 인권침해 끝에 시설폐쇄 처분을 받은 제주 장애인거주시설 ‘사랑의집’. 그러나 그곳에는 여전히 중증 발달장애인 13명이 남아 있다. 제주 장애인권단체들은 이들이 또다시 다른 시설이나 원가정으로 보내져서는 안 된다며, 지난 28일 오전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시에 13명 모두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13명 남았는데… 제주시, 자립지원은 없이 ‘전원’만 안내

사랑의집에서는 2021년부터 약 3년간 압정이 부착된 손목 보호대 사용, 방임, 코로나19 시기 출입문 폐쇄, 신체적·정서적 학대 등 반복적인 인권침해가 확인됐다. 이에 2023년 7월 시설폐쇄가 결정됐고,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6년 8월 1일 폐쇄됐지만 여전히 13명의 장애인이 시설에 남아 있다. 제주시는 이들의 ‘안전한 전원 조치 및 권익 보호’를 이유로 오는 10월 31일까지 사랑의집을 임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주도와 제주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설폐쇄 처분 이후 퇴소한 24명 가운데 20명(83%)이 다른 시설로 옮겨졌고 가정으로 돌아간 사람은 2명(8%), 지역사회에 자립한 사람은 2명(8%)에 그쳤다. 특히 다른 시설로 전원된 이들 중 일부는 강릉·안산·인천·청주 등 제주 밖 시설로 보내졌다. 현재 사랑의집에 남아 있는 13명 중 1명도 경기도 시흥시 소재 시설에 가입소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시가 지난 7월 사랑의집 거주장애인 보호자에게 보낸 공문에는 “이용자의 안전한 전원을 위하여 개별 상담 및 전원 절차 등에 적극 협조하여 주길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시설폐쇄 및 임시운영 계획이 담겼다. 그러나 공문에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지원이나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서비스에 관한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14일에는 희망하는 전원 시설을 알려달라며 전원 대상 시설 25곳의 목록을 첨부한 공문을 보냈다. 이 가운데 장애인거주시설 9곳 중 5곳은 정원 30명을 초과하는 대형시설이었고, 단기장애인거주시설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해당 공문에는 “자립을 희망할 경우”에 한해 자립욕구조사를 실시한다며 개인정보 동의서를 9월 21일까지 제출하도록 안내하면서도, “기한 내 제출자에 한해 지원”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공대위 “가족 책임 전가·시설 전원 아닌 지역사회 자립 지원해야”

최근 제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아래 제주장차연)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제주지부 등 장애인·시민사회단체들은 ‘제주 사랑의집 인권참사 피해생존자 13명 전원 자립지원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를 구성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제주도와 제주시에 △사랑의집 13명 자립지원 계획 수립 및 이행 △자립지원 계획 수립을 위한 민관 TF 구성 △자립지원 계획 수립을 위한 지역사회 낮활동 프로그램 시행 △사랑의집 임시 운영 기간과 지역사회 전환이 완료될 때까지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한 공공인력 파견 △사랑의집 운영법인 성심원 특별행정감사 실시 △탈시설 지원 조례 제정을 요구했다.

기자회견 직후 공대위는 제주도청에서 제주도·제주시 장애인복지과와 면담을 진행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면담에서 제주도와 제주시 측은 자립지원을 원하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공대위는 남아 있는 13명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나 적극적인 지원 의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제주도와 제주시 측은 공대위의 요구안에 대해 오는 10월 8일까지 답변하기로 했다.

면담에 참여한 공대위 공동대표인 박정경 제주장차연 상임대표는 30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부모들의 불안을 이해하고, 자립에 필요한 지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부모님들이 자립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자립이나 다른 시설로의 전원에 실패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면 돌봄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제주도가 먼저 부모님들이 왜 불안해하는지, 왜 자립을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자립 욕구조사에 신청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립하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지자체와 정부가 어떻게 사회적 돌봄을 책임질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며 “장애의 정도에 따라 자립 가능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원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중증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와 지역사회에서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시설 당사자 “장애인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이날 제주도의회 기자회견에는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도 참석했다. 시설을 7번이나 옮겨 다녔다고 자신을 소개한 박경인 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는 “낯선 곳으로 계속 이동하는 삶이 얼마나 불안한지 아는가”라며 “장애가 있다고 우리의 삶을 대신 결정하지 말아달라. 우리를 시설에 가두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달라. 지역사회의 이웃이자 시민으로 존중받으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생각과 표현을 못한다는 이유로 다시 시설에 보내는 것에 반대한다”며 “사랑의집 부모님들도 우리와 함께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는 말이나 의사표현이 어려운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집과 필요한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